[한희철 목사님] 책상이 된 대문
[한희철 목사님] 책상이 된 대문
by 한희철 목사님 2018.11.14
왜 그럴까요,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이 좋습니다. 허름하고 낡았어도 오래된 것에 더 호감이 갑니다. 오래된 것 속에는 세월이 녹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오래된 것에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그 무엇인가가 담겨 있지 싶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롭고 놀라운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조금만 늦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고 말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오래된 것들에 더 마음이 갑니다.
한쪽에 켜켜 세워져 있는 대문을 보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낯선 길을 지나가다가 옛 물건을 한곳에 모아둔 것을 보게 되었고, 궁금해서 들렀더니 별별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주춧돌에 구들장까지, 저런 물건을 다 모아두었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제법 넓은 터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대문들을 본 것이었습니다.
사업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라지는 옛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한 곳에 죄 모아놓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파는 곳이 있다는 것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사라지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묻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누군가의 집 대문이었을 문짝들이 제법 서 있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집을 헐며 나오는 나무들은 태워버리거나 부숴버리지만, 누군가가 정성스레 대문을 떼어 보관을 했던 것이겠지요. 그중 눈에 띄는 대문이 한 짝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두 개의 대문이 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옹이가 진 부분도 그러하고, 나이테도 그러하고, 필시 같은 나무를 켠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 나무에서 켜낸 송판으로 만든 두 개의 문, 드는 생각이 있어 그 대문을 사기로 했습니다.
값은 생각만큼 싸지 않았습니다. 쓰던 대문인데 이만한 값을 받나, 잠시 망설여지긴 했지만 이내 그런 마음을 접었던 것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법 넓은 무늬를 만들어낼 만큼의 세월이라면, 그리고 베어진 뒤에도 헤어지지 않고 하나의 짝을 이룬 대문이 되었다면 얼마든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대문 하나는 나중에 기도제목을 걸 용도로 따로 보관을 했고, 다른 하나는 책상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지인이 훌륭하게 생각을 받아주었습니다. 중고 가구점에서 유리판이 덮인 테이블을 구한 뒤 유리 대신 대문을 얹고 고정을 하자, 훌륭한 책상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대문으로 만든 책상에 앉으면 마음이 새롭습니다. 물론 나이테가 금방 느껴질 만큼 표면은 매끄럽지 못합니다. 줄을 맞춰 박은 꽃잎 모양의 양철 장식은 굳이 떼어내지를 않았습니다. 나이테를 손으로 만지면 까끌까끌한 느낌이 전해지는데, 마치 나무의 속살을 만지는 것 같습니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큰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매끈하고 화려한 책상에 비하면 분명 보잘것없고 허름한 책상이지만, 버려질 수 있었던 것을 다시 살려 책상으로 사용하는 대문, 내 생각이나 글도 그렇게 사물과 세상을 살려내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책상에 앉을 때마다 슬며시 하곤 합니다.
한쪽에 켜켜 세워져 있는 대문을 보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차를 몰고 낯선 길을 지나가다가 옛 물건을 한곳에 모아둔 것을 보게 되었고, 궁금해서 들렀더니 별별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주춧돌에 구들장까지, 저런 물건을 다 모아두었구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제법 넓은 터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대문들을 본 것이었습니다.
사업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라지는 옛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한 곳에 죄 모아놓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파는 곳이 있다는 것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사라지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묻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누군가의 집 대문이었을 문짝들이 제법 서 있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집을 헐며 나오는 나무들은 태워버리거나 부숴버리지만, 누군가가 정성스레 대문을 떼어 보관을 했던 것이겠지요. 그중 눈에 띄는 대문이 한 짝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 두 개의 대문이 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옹이가 진 부분도 그러하고, 나이테도 그러하고, 필시 같은 나무를 켠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 나무에서 켜낸 송판으로 만든 두 개의 문, 드는 생각이 있어 그 대문을 사기로 했습니다.
값은 생각만큼 싸지 않았습니다. 쓰던 대문인데 이만한 값을 받나, 잠시 망설여지긴 했지만 이내 그런 마음을 접었던 것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법 넓은 무늬를 만들어낼 만큼의 세월이라면, 그리고 베어진 뒤에도 헤어지지 않고 하나의 짝을 이룬 대문이 되었다면 얼마든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대문 하나는 나중에 기도제목을 걸 용도로 따로 보관을 했고, 다른 하나는 책상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지인이 훌륭하게 생각을 받아주었습니다. 중고 가구점에서 유리판이 덮인 테이블을 구한 뒤 유리 대신 대문을 얹고 고정을 하자, 훌륭한 책상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대문으로 만든 책상에 앉으면 마음이 새롭습니다. 물론 나이테가 금방 느껴질 만큼 표면은 매끄럽지 못합니다. 줄을 맞춰 박은 꽃잎 모양의 양철 장식은 굳이 떼어내지를 않았습니다. 나이테를 손으로 만지면 까끌까끌한 느낌이 전해지는데, 마치 나무의 속살을 만지는 것 같습니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큰 나무 한 그루를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매끈하고 화려한 책상에 비하면 분명 보잘것없고 허름한 책상이지만, 버려질 수 있었던 것을 다시 살려 책상으로 사용하는 대문, 내 생각이나 글도 그렇게 사물과 세상을 살려내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책상에 앉을 때마다 슬며시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