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슬픈 눈물
[권영상 작가님] 슬픈 눈물
by 권영상 작가님 2018.11.15
나는 앉았다. 그리고 내 건너편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남자. 청색 재킷을 입었다. 뒷모습만 봐도 40대 후반이거나 50대 초반쯤. 키가 훤칠한 그는 가끔 통화중이다.
내가 전철에서 내릴 준비를 하려고 일어설 때 그도 움직였다. 나는 내렸다. 계단을 오를 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며 출구를 걸어 올랐다. 바깥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쭉 따라 걸어 내려올 때다.
으으아앗! 등 뒤에서 외마디 소리가 났다. 난데없는 비명에 순간, 뒤돌아봤다. 그 남자였다. 전철에서 보았던 그 청색 재킷의, 40대 후반이거나 50대 초반의. 길 건너편 사람을 부르는가 싶어 건너편 골뱅이 술집 앞길을 슬쩍 봤다.
그때쯤 그가 다시 소리쳤다. 으아아앗!
내 곁에, 또는 내 앞에 가던 이들이 뒤돌아봤다. 그는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한 번 더 소리치고는 옆 골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집으로 오는 내내 그 외마디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에게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다니던 회사에서 아니면 오랜 거래처가 거래를 끊은 걸까. 사람 많은 곳에서 비명이라도 내질러야 할 만큼의 아픔이 있었던 모양이다.
요 며칠 전이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면 산으로 가는 느티나무 오솔길이 있다. 나는 가끔 그 길을 산책하듯 애용한다. 밤이어도 가로등이 있어 호젓하게 걷는 게 좋다.
그날은 껌껌한 밤, 저쪽 느티나무 숲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여자 울음이었다. 바람의 비명처럼 울고 있었다. 눈물에 섞여 나오는 비명은 한 가지 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어둡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른이거나 마흔이 조금 안 된, 딸이라면 딸 같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딸아이만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울음을 방해할까 봐 돌아서다가 다시 천천히 가던 길을 걸었다. 어두운 밤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울음이지만 그래도 그녀를 위해 낮은 기침소리만이라도 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숲 안에서 나무를 부여잡고 울었다. 몸 안에 오래 쌓인 서러움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슬픔이 어서 그치기를 바라며 오솔길 끝까지 걸어갔다. 그 끝에 그녀가 타고 왔음직한 승용차가 서 있었다. 그녀는 울음을 참고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와 이 컴컴한 숲에 그녀를 서럽게 한 울음을 풀어내고 있었다.
괜히 나도 서러워지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온 삶에도 서러움 많던 시절이 군데군데 있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바닷가 바위에 서서 깊은 바다 속을 넘겨다보았고, 산벼랑에 서서 그 아래 누워있는 나를 몇 번이나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승용차가 보이는 그곳쯤에서 돌아섰다. 이만큼 올 때까지도 한번 터진 그녀의 만신창이가 된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사람은 때로 그게 미안한 일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한 사람을 떠나거나 스스로 외롭기를 자처할 때가 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녀는 내가 후문에 들어설 때까지 그 컴컴한 숲에서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을 거기 두고 돌아오는 내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울음이 나를 아프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이 눈물과 고통 없이 살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전철에서 내릴 준비를 하려고 일어설 때 그도 움직였다. 나는 내렸다. 계단을 오를 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며 출구를 걸어 올랐다. 바깥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쭉 따라 걸어 내려올 때다.
으으아앗! 등 뒤에서 외마디 소리가 났다. 난데없는 비명에 순간, 뒤돌아봤다. 그 남자였다. 전철에서 보았던 그 청색 재킷의, 40대 후반이거나 50대 초반의. 길 건너편 사람을 부르는가 싶어 건너편 골뱅이 술집 앞길을 슬쩍 봤다.
그때쯤 그가 다시 소리쳤다. 으아아앗!
내 곁에, 또는 내 앞에 가던 이들이 뒤돌아봤다. 그는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한 번 더 소리치고는 옆 골목으로 빨려 들어갔다.
집으로 오는 내내 그 외마디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에게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다니던 회사에서 아니면 오랜 거래처가 거래를 끊은 걸까. 사람 많은 곳에서 비명이라도 내질러야 할 만큼의 아픔이 있었던 모양이다.
요 며칠 전이다. 아파트 후문을 나서면 산으로 가는 느티나무 오솔길이 있다. 나는 가끔 그 길을 산책하듯 애용한다. 밤이어도 가로등이 있어 호젓하게 걷는 게 좋다.
그날은 껌껌한 밤, 저쪽 느티나무 숲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여자 울음이었다. 바람의 비명처럼 울고 있었다. 눈물에 섞여 나오는 비명은 한 가지 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어둡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른이거나 마흔이 조금 안 된, 딸이라면 딸 같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딸아이만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울음을 방해할까 봐 돌아서다가 다시 천천히 가던 길을 걸었다. 어두운 밤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울음이지만 그래도 그녀를 위해 낮은 기침소리만이라도 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숲 안에서 나무를 부여잡고 울었다. 몸 안에 오래 쌓인 서러움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슬픔이 어서 그치기를 바라며 오솔길 끝까지 걸어갔다. 그 끝에 그녀가 타고 왔음직한 승용차가 서 있었다. 그녀는 울음을 참고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와 이 컴컴한 숲에 그녀를 서럽게 한 울음을 풀어내고 있었다.
괜히 나도 서러워지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온 삶에도 서러움 많던 시절이 군데군데 있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바닷가 바위에 서서 깊은 바다 속을 넘겨다보았고, 산벼랑에 서서 그 아래 누워있는 나를 몇 번이나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승용차가 보이는 그곳쯤에서 돌아섰다. 이만큼 올 때까지도 한번 터진 그녀의 만신창이가 된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사람은 때로 그게 미안한 일인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한 사람을 떠나거나 스스로 외롭기를 자처할 때가 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녀는 내가 후문에 들어설 때까지 그 컴컴한 숲에서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을 거기 두고 돌아오는 내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울음이 나를 아프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이 눈물과 고통 없이 살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