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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백자부

[김민정 박사님] 백자부

by 김민정 박사님 2018.11.26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김상옥, 「백자부」전문

아침 출근길에 보니 샛노랗게 물들었던 가로수의 은행잎이 어느새 다 떨어지고 나뭇잎 하나 없이 하늘 향해 꼿꼿이 가지를 뻗치고 있는 나목의 모습에 “아, 겨울이구나!”하는 생각이 갑자기 몰려왔다. 사는 일에 바쁜 것인지, 쓸데없이 신경 쓰는 일이 많아서인지 계절이 지나가도 무심히 보내다가 어느 날 문득 느끼는 것은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것이다. 나뭇잎 하나 없이 가지만 남아 있는 나목의 모습에서 겉치장 다 벗은 모습을 보아 조금은 숙연한 기분이다. 잎을 보느라 봄, 여름에는 미처 못 본 나무 본연의 깨끗한 모습을 보는 듯해서이다. 김상옥의 시조 백자부가 생각나는 아침이었다.
위 시조를 읽으면, 백자의 모습이 선하게 눈에 들어온다. 첫째 수에서 보듯 이 도자기는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라고 하여 겨울의 청량감이 도는 모습 속에 소나무와 백학 한 쌍이 그려진 도자기를 묘사한 듯하다. 시인은 그 속에서 소나무 굽은 가지에서 이는 바람 소리도 읽어내고 지금 막 깃을 접은 듯한 백학 한 쌍을 보고 있다. 그뿐 아니다. 불로초도 보고, 채운과 시냇물과 사슴과 숲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백자 속에 그려진 문양을 보며 그것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더구나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는 이라고 표현한 모습에서 그런 흠을 갖지 않은 정말로 깨끗하고 잘 다듬어진 한국 백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유명했던 백자를 소재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이 한 편의 시조에서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한국인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 그것을 시조에 담아내려 노력했던 김상옥 시조시인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의 백자는 고려 말기에 정요의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명나라 백자의 영향과 흰 것을 사랑하고 숭상하던 일반적 풍조에 따라 초기부터 꾸준히 발전되었다. 백자는 초기에는 진귀품으로 궁중에서만 사용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전국에 자기소가 136군데 있다는 기록이 보이며, 백자가 기술적으로 완성된 것은 이 시기로 추측하고 있다. 예종 이후 전국적으로 제조가 성행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위축되어 버리고, 일본에 전파되어 일본 백자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백자는 완벽을 자랑하는 중국 백자와는 달리 대청색, 대회백색, 유백색의 것으로 그 색채에서도 특색을 지님은 물론, 기교면에서도 번잡에서 초탈한 소박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정적(靜寂)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고려 백자에 비해 정련된 기묘한 멋은 없다고 하나 조대호방(粗大豪放)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위키백과-
한국적인 소재, 한국적인 문화, 한국적인 문학으로 창작된 이 시조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