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듣고 싶은 말
[한희철 목사님] 듣고 싶은 말
by 한희철 목사님 2018.11.27
운전을 하다 보면 생각지 않은 상황을 경험하게 되지요. 최근에 저는 가벼운 접촉사고를 몇 번 경험하였습니다. 임지를 옮기며 바꿔 타게 된 차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이다 싶으면서도, 나이를 먹는 탓 아닌가 싶어 조금은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당황스럽게 여겨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30여 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적도 당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서너 달 사이에 몇 번의 사고,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모두가 후진을 하다가 생긴 일이었습니다. 주차된 차와 부딪치기도 했고, 전봇대에 백미러를 깨뜨리기도 했고요.
서너 주 전 어머니 댁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던 중 멀쩡히 서 있는 차와 부딪쳤는데, 내려서 살펴본 뒤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크게 긁힌 것이 아닌 데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싶어 메모를 남겼습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는데 메모를 확인한 차 주인이 카센터에서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뒷범퍼 도색과 후미등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원하면 카센타 주인을 바꾸어 주겠다고 했지만, 수리에 든다는 비용 40만 원을 보냈습니다.
지난주였습니다. 먼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마침 퇴근 시간과 겹쳐 차가 많이 밀렸습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던 중 뒤에서 끼어들기를 하던 차가 내 차와 부딪쳤습니다. 내려서 보니 두 차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지요. 복잡한 도로 상황, 미안하다며 건넨 운전자의 명함을 받고는 이내 출발을 했습니다.
다음날 사고가 난 부위를 살폈더니 상태가 경미했고, 치약으로 닦아내자 크게 티가 나질 않았습니다. 대학 부교수, 혹시 강의 중일지 몰라 전날 받은 명함을 찾아 상태가 경미하니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내 답장이 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쓰이면 수리를 하라고, 기꺼이 보상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별문제가 없으니 따로 신경 쓰지 말라고 잊어버리라고 답장을 보냈고, 고맙다며 평안을 빈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먼저 사고를 내어 수리비 40만 원을 보낼 때, 내 차도 수리하기 위해 카센터에 들렀더니 사고가 난 부위를 왁스로 닦더니 별문제가 없다며 수리비를 따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상대방 차 주인에게 이런 말을 기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양심껏 메모를 남겨 주어 고맙습니다.’ 사고를 당한 차 주인이 양심껏 최소한의 수리비를 청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흔쾌할까, 뜬금없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얼마 뒤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나는 내가 듣고 싶어 했던 그 말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할 때 마침내 우리에게 돌아오는 말 또한 내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당황스럽게 여겨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30여 년 가까이 운전을 하면서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적도 당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서너 달 사이에 몇 번의 사고,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모두가 후진을 하다가 생긴 일이었습니다. 주차된 차와 부딪치기도 했고, 전봇대에 백미러를 깨뜨리기도 했고요.
서너 주 전 어머니 댁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던 중 멀쩡히 서 있는 차와 부딪쳤는데, 내려서 살펴본 뒤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크게 긁힌 것이 아닌 데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싶어 메모를 남겼습니다.
며칠 뒤 연락이 왔는데 메모를 확인한 차 주인이 카센터에서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뒷범퍼 도색과 후미등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원하면 카센타 주인을 바꾸어 주겠다고 했지만, 수리에 든다는 비용 40만 원을 보냈습니다.
지난주였습니다. 먼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마침 퇴근 시간과 겹쳐 차가 많이 밀렸습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던 중 뒤에서 끼어들기를 하던 차가 내 차와 부딪쳤습니다. 내려서 보니 두 차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지요. 복잡한 도로 상황, 미안하다며 건넨 운전자의 명함을 받고는 이내 출발을 했습니다.
다음날 사고가 난 부위를 살폈더니 상태가 경미했고, 치약으로 닦아내자 크게 티가 나질 않았습니다. 대학 부교수, 혹시 강의 중일지 몰라 전날 받은 명함을 찾아 상태가 경미하니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내 답장이 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쓰이면 수리를 하라고, 기꺼이 보상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별문제가 없으니 따로 신경 쓰지 말라고 잊어버리라고 답장을 보냈고, 고맙다며 평안을 빈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먼저 사고를 내어 수리비 40만 원을 보낼 때, 내 차도 수리하기 위해 카센터에 들렀더니 사고가 난 부위를 왁스로 닦더니 별문제가 없다며 수리비를 따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상대방 차 주인에게 이런 말을 기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양심껏 메모를 남겨 주어 고맙습니다.’ 사고를 당한 차 주인이 양심껏 최소한의 수리비를 청구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흔쾌할까, 뜬금없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얼마 뒤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나는 내가 듣고 싶어 했던 그 말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할 때 마침내 우리에게 돌아오는 말 또한 내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