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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청산靑山이여!

[김민정 박사님] 청산靑山이여!

by 김민정 박사님 2018.12.19

오로지 하늘 바라/ 청산靑山이여 서 있는가?
옹종기 네 권속들/ 날개 펼쳐 마주 쥐고
흘러간 세월에 안겨/ 오늘 날을 맞음인가.

무리지어 사는 곳에/ 네 없이 어이하리
물 줄기 바람 소리/ 언제나 곁에 두고
온갖 것 길러 섬기는/ 내 벗이여 청산靑山이여!

소용돌아 풍화風化되어/ 땅 위에 자리 잡고
네 품으로 찾아드는/ 인간人間이 못 잊혀져
그렇게 솟아 앉아서/ 낮과 날을 삶인가?
- 리태극, 「청산靑山이여!」 전문

리태극 선생님의 작품에는 산수山水가 있고, 순후한 인심의 사람들이 있다. 그는 인간의 정감을 자연에 용해시켜 한국적 정서가 잘 드러나는 작품을 씀으로써 서정적 미학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고려시대 나옹선사(1320~1376)의 다음 시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선사의 시에서는 청산과 인간은 불이관계不二關係로 화자와 청산의 거리감이 없다. 리태극의 작품에서도 ‘내 벗이여, 청산이여’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네 품으로 찾아드는 인간’이라 청산에 가까이 접근하고, 아예 인간은 그 안에 안겨 안주해 버리는, 청산靑山은 인간의 피안공간彼岸空間으로 제시되고 있다.
어질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사는 곳은 바로 화자의 고향이라 볼 수 있으며 바로 여기에는 청산이 벗으로 있어 준다. 이 시조에는 순수 자연공간이며 화자의 어렸을 때 자라던 고향의 모습이기도 한 청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 자연을 통한 서정세계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심정을 드러내며, 그러한 자연공간인 고향은 화자에게 평화공간으로 인식된다. 변화무쌍한 현실의 삶 속에서 사는 인간들에게는 변함없는 영원의 모습으로, 우주 만물의 존재공간과 질서공간으로 서 있는 ‘온갖 것 길러 섬기는’ 청산이 정신적 안식처가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청산을 통해서 화자는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고 인간의 미덕을 지닌 삶을 그리워하며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시인은 물질만능物質萬能인 현대인의 삶 속에서 대자연의 질서를 겸허하게 지켜보며,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이상 세계의 구현을 위한 삶을 끝없이 지향하고자 한다.
월하 리태극은 시조시인이며 국문학자이다. 1926년 최남선이 시조부흥운동을 벌이고, 이론적 뒷받침이 없던 시조단에 노산·가람의 뒤를 이은 그의 학문적인 연구와 시조의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은 시조가 현대시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35년 여름 해금강에서 지은 「하루살이」를 처녀작으로 1953년 한국일보에 「산딸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조를 창작하기 시작했고, 1960년에 시조전문지 《시조문학》을 하한주·조종현·김광수 등과 더불어 창간하여 현대시조발전에 기여하였다.
시조는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창작되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시다. 시조는 진정한 우리의 문학으로, 한국문학의 브랜드로 세계에 소개되고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야 마땅하다. 일본의 하이꾸처럼 우리의 전통문학인 시조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먼저 시조를 더 많이 사랑하고 향유하고 창작하는 시조의 저변확대와 대중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가오는 새해는 ‘시조 사랑의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