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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어정쩡하지 말자

[한희철 목사님] 어정쩡하지 말자

by 한희철 목사님 2019.01.02

어쩌면 우리를 가장 힘들고 지치게 하는 것은 어정쩡함인지도 모릅니다. 일의 몰두나 고됨보다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함이 우리를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흠뻑 뛰어들든지 아예 외면하든지, 뜨겁든지 차갑든지, 예 하던지 아니요 하던지, 그렇지 못한 채 뜨뜻미지근하게 이어지는 상태가 말이지요.
‘동시에 동서로 갈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시(同時)에 동서(東西)로 가려고 하다가는 이내 옷과 가랑이가 찢어지고 맙니다. 동쪽이 내 길이라면 서쪽을 등져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북쪽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남쪽을 등질 때 걸음을 옮길 수가 있고요. 내가 택한 길이 어떤 길이든 내가 내 길을 간다고 하는 것은, 등져야 할 것을 계속 등질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조조 모예스가 쓴 <미 비포 유>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는 책의 제목인의 의미에 대해 ‘Who I was before I met you’라 설명을 했다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의 나’라는 뜻이 될 터인데, 책을 읽어보면 ‘당신을 만난 후의 나’를 의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주인공인 루이자와 윌은 서로를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이 너무나도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을 때쯤 두 눈이 젖고, 다만 무난하게, 별 탈 없이, 별문제 없이, 다만 오점을 남기지 않고, 그냥저냥, 어정쩡하게, 결국은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깊은 병이구나, 아픈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연암 박지원이 쓴 글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화담 선생이 출타를 했다가 집을 잃어버리고 길가에서 울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저는 다섯 살 때 눈이 멀어서 앞을 못 본지 20년이나 되었답니다. 오늘 아침나절에 밖으로 나왔다가 홀연 천지 만물이 맑고 밝게 보이기에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 가려 하니 길은 여러 갈래요, 대문들이 서로 엇비슷하여 저희 집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울고 있습지요.”
이야기를 들은 선생은 집에 돌아가는 방법을 깨우쳐 주겠다며 이렇게 일러줍니다. “도로 눈을 감아라. 그러면 곧 너의 집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소경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두드리며 걸어가기 시작했고 큰 어려움 없이 집에 돌아갈 수가 있었더랍니다.
도로 눈을 감고 가라는 이야기는 어설프게 눈을 뜬다는 것이 얼마나 위태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눈을 떴다면 눈을 뜬 사람으로 살아야지 어정쩡하게 눈을 뜨고 사는 것은 불편하고 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우리를 찾아온 한 해, 새해에는 부디 온갖 어정쩡함을 버리고 마음 다해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