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인생의 비밀
[권영상 작가님] 인생의 비밀
by 권영상 작가님 2019.08.29
인생엔 비밀이 있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도 다 아는 비밀이다. 영생이란 말은 그런 비밀에서 태어났다.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도 옳은 비밀 같지만 틀린 비밀이 아닐까 싶다.
서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며 저녁밥을 생각했다. 아내가 멀리 볼일을 보러 나간 지 스무날 째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가끔 가던 동네 음식점에 들렀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음식점 안이 조용하다. 들어선 채로 벽에 붙은 메뉴를 바라보고 있을 때다.
“어데서 뵌 분 같은 데요?”
일 보는 중년의 여자 분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음식이 나오는 동안 서점에서 사온 책을 꺼냈다.
“저, 혹시!” 데스크에 돌아가 앉아 있던 여자 분이 다시 내게로 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그분이 안도하는 투로 말했다.
“선생님이시죠? 우리 동해 선생님!”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여자 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때 교직에 있었고, 그분이 말하는 동해 담임이었던 것은 맞았다.
그렇다는 내 말에 그분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중 3 담임을 하던 어느 해엔가 우리 반에 동해가 있었다. 3월 첫날부터 그는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건 어쩌면 동해 자신도 힘들었다는 뜻이 되겠다.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오랜 수소문 끝에 학교 인근 공원에서 만났다. 덩치가 큰 그는 오토바이로 동네 형들과 음식배달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배도 배우고, 술도 배우고, 오토바이도 타고, 형들과 고민 없이 노는, 이를테면 학교 밖 세상의 재미를 일찍 맛들여가고 있었다.
“졸업하고 그 일을 해도 늦지 않잖아?”
그와 오랫동안 공원의 숲을 거닐며 이야기했지만 그는 돌아섰다. 인생의 비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거였다.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졸업장 없이도 나름대로 지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터득한, 어린 그의 마음을 나로서는 돌릴 수 없었다.
“공부 잘 해봤자, 공무원밖에 더 하나요?”
동해는 끝내 졸업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말은 오래오래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러느라 몇 번인가 동해 어머니와 만났던 모양이었다.
“그래. 동해 지금 뭐하지요?”
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태권도장을 하고 있어요. 안산에서.” 동해 어머니인 그분이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중에야 정신이 들어 검정고시를 봐 다니는 데까지 다 다녔고, 그때 끈질기게 타이르던 나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거였다.
“우리 동해에겐 그때 선생님이 마지막 담임이셨어요.” 나는 키 큰 동해를 생각하며 내어온 식사를 마쳤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 속에 숨겨진 비밀의 방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그것을 확실히 들여다본 사람일수록 어쩌면 인생을 더 탄탄하게 살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동해도 그렇기를 바라며 나는 일어섰다. 음식값을 치르는 내 손바닥에 동해어머니가 유리병에서 꺼낸 사탕 하나를 올려놓아준다. 고맙다.
서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며 저녁밥을 생각했다. 아내가 멀리 볼일을 보러 나간 지 스무날 째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가끔 가던 동네 음식점에 들렀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음식점 안이 조용하다. 들어선 채로 벽에 붙은 메뉴를 바라보고 있을 때다.
“어데서 뵌 분 같은 데요?”
일 보는 중년의 여자 분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음식이 나오는 동안 서점에서 사온 책을 꺼냈다.
“저, 혹시!” 데스크에 돌아가 앉아 있던 여자 분이 다시 내게로 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그분이 안도하는 투로 말했다.
“선생님이시죠? 우리 동해 선생님!”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여자 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때 교직에 있었고, 그분이 말하는 동해 담임이었던 것은 맞았다.
그렇다는 내 말에 그분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중 3 담임을 하던 어느 해엔가 우리 반에 동해가 있었다. 3월 첫날부터 그는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건 어쩌면 동해 자신도 힘들었다는 뜻이 되겠다.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오랜 수소문 끝에 학교 인근 공원에서 만났다. 덩치가 큰 그는 오토바이로 동네 형들과 음식배달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배도 배우고, 술도 배우고, 오토바이도 타고, 형들과 고민 없이 노는, 이를테면 학교 밖 세상의 재미를 일찍 맛들여가고 있었다.
“졸업하고 그 일을 해도 늦지 않잖아?”
그와 오랫동안 공원의 숲을 거닐며 이야기했지만 그는 돌아섰다. 인생의 비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거였다. 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졸업장 없이도 나름대로 지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터득한, 어린 그의 마음을 나로서는 돌릴 수 없었다.
“공부 잘 해봤자, 공무원밖에 더 하나요?”
동해는 끝내 졸업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남기고 간 말은 오래오래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러느라 몇 번인가 동해 어머니와 만났던 모양이었다.
“그래. 동해 지금 뭐하지요?”
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가 지금 뭘 하고 있을지.
“태권도장을 하고 있어요. 안산에서.” 동해 어머니인 그분이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중에야 정신이 들어 검정고시를 봐 다니는 데까지 다 다녔고, 그때 끈질기게 타이르던 나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거였다.
“우리 동해에겐 그때 선생님이 마지막 담임이셨어요.” 나는 키 큰 동해를 생각하며 내어온 식사를 마쳤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 속에 숨겨진 비밀의 방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그것을 확실히 들여다본 사람일수록 어쩌면 인생을 더 탄탄하게 살아낼지도 모를 일이다. 동해도 그렇기를 바라며 나는 일어섰다. 음식값을 치르는 내 손바닥에 동해어머니가 유리병에서 꺼낸 사탕 하나를 올려놓아준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