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사랑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
[한희철 목사님] 사랑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
by 한희철 목사님 2019.10.16
갈수록 우리 사회는 갈등과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해와 공감이 자리 잡아야 할 자리에 증오와 불신이 자리를 잡고는 뿌리를 키워갑니다. 혼자의 목소리로 되지 않으면 세를 불려 목소리를 높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가짜를 동원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분노를 자극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냅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함부로 북을 치는 이들이나 북소리만 들리면 누가 치는 북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흥분을 하는 많은 사람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나 싶어 마음이 아뜩해지곤 합니다.
혼란한 이 시대에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으로 엠마우스 공동체를 시작한 피에르 신부가 쓴 책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매년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설문조사를 통해 순위를 매기곤 하는데, 8년 동안 7차례나 1위에 오른 이가 피에르 신부였습니다. 그를 향한 프랑스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이 남다르다 여겨집니다. 전쟁 중에는 항독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게슈타포에 쫓기는 유대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스위스 국경을 넘기도 하고,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이 되어 활동을 하고, 엠마우스 공동체를 만들어 빈민들과 노숙자들과 부랑자들과 함께 살고, 집 없는 자들을 위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집을 지어주고, 빈곤과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온몸으로 싸웠던 투사, 한평생 피에르 신부의 삶은 철저하게 신앙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사랑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사랑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 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그것이 그분의 본질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우리가 또는 그들 스스로 비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간에 근본적인 구별이 없다고 확신한다.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과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고백이나, 신자와 비신자 간의 근본적인 구별은 없다며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과의 구별이 있을 뿐이라는 고백이나, 유일한 신성모독은 사랑에 대한 모독뿐이라는 고백은 위험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뜨겁고 진중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 삶 속에는 사랑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치는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서 벗어난 정의는 날선 무기일 뿐입니다.
혼란한 이 시대에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으로 엠마우스 공동체를 시작한 피에르 신부가 쓴 책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매년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설문조사를 통해 순위를 매기곤 하는데, 8년 동안 7차례나 1위에 오른 이가 피에르 신부였습니다. 그를 향한 프랑스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이 남다르다 여겨집니다. 전쟁 중에는 항독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게슈타포에 쫓기는 유대인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스위스 국경을 넘기도 하고,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이 되어 활동을 하고, 엠마우스 공동체를 만들어 빈민들과 노숙자들과 부랑자들과 함께 살고, 집 없는 자들을 위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집을 지어주고, 빈곤과 불의와 불평등에 맞서 온몸으로 싸웠던 투사, 한평생 피에르 신부의 삶은 철저하게 신앙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사랑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사랑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 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그분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그것이 그분의 본질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우리가 또는 그들 스스로 비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간에 근본적인 구별이 없다고 확신한다.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과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나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고백이나, 신자와 비신자 간의 근본적인 구별은 없다며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길 거부하는 사람과의 구별이 있을 뿐이라는 고백이나, 유일한 신성모독은 사랑에 대한 모독뿐이라는 고백은 위험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뜨겁고 진중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 삶 속에는 사랑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치는 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에서 벗어난 정의는 날선 무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