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생(生)이라는 바닷가에서도
[한희철 목사님] 생(生)이라는 바닷가에서도
by 한희철 목사님 2019.10.30
모임이 있어 부산을 찾았습니다. 2박 3일의 일정이었는데, 숙소가 바다에서 가까운 해운대였습니다. 창문을 통해 드넓은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멋진 곳이었지요. 하지만 해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다보다도 고층 건물들이었습니다. 아름답게 펼쳐진 바닷가를 따라 층수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의 높다란 건물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지요.
그런 모습은 인간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인간이 보이고 있는 무지와 아집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연의 위력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있다 여겨졌습니다. 바다에서 저처럼 가까운 곳에 저처럼 높고 큰 건물을 지어도 되는 걸까 싶었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칠 수도 있는, 사람의 예측을 뛰어넘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능력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깨닫게 될 때, 그때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일까 두렵기까지 했지요.
해운대의 모래는 해마다 강원도 하천에서 사다가 붓는다고 합니다. 모래를 사서 잘게 부순 뒤에 해변에 뿌린다는 것이지요. 갈수록 모래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데, 그 또한 고층 빌딩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산 쪽으로 치달려야 하는데, 빌딩에 막혀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바람의 흐름이 막혀 모래가 쌓이는 대신 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래만 보아도 충분한 교훈이 된다 싶은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빌딩을 세우고 있으니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둘째 날 이른 아침, 아내와 함께 해변을 산책했습니다. 휴가철이 한참 지나서인지 해변은 한산했습니다. 맨발로 모래 위를 걷는 사람, 운동 삼아 달리기를 하는 사람, 서로의 손을 잡고 장난을 치는 연인들, 철 지난 바다는 오히려 한적해서 좋았습니다.
해변 모래를 밟으며 걸어가던 중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사람들의 발자국과 새들의 발자국이 섞여 있었습니다. 신발 자국도 있고, 맨발 자국도 있고, 한 마리인지 서너 마리인지 새들의 발자국도 섞여 있었습니다. 누가 먼저 발자국을 남겼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발자국과 새들의 발자국이 동시에 찍힐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일정한 차이를 두고 같은 자리를 지나간 흔적이 같은 자리에 남았을 뿐이겠지요.
모래 위에 찍힌 서로 다른 발자국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먼저 발자국을 남겼다고 그가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발자국을 남겼다고 발자국을 남긴 자가 땅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물결이 한 번 지나가면 모든 발자국은 지워지고 말 테니까요.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 어느 날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요. 지금이야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얼굴을 붉히기도 하지만, 어느 날 그 모든 것들이 소용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해운대 해변 모래 위에 찍힌 서로 다른 발자국들처럼, 생(生)이라는 바닷가에서도 말이지요.
그런 모습은 인간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인간이 보이고 있는 무지와 아집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연의 위력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있다 여겨졌습니다. 바다에서 저처럼 가까운 곳에 저처럼 높고 큰 건물을 지어도 되는 걸까 싶었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칠 수도 있는, 사람의 예측을 뛰어넘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능력이 너무나 보잘것없음을 깨닫게 될 때, 그때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일까 두렵기까지 했지요.
해운대의 모래는 해마다 강원도 하천에서 사다가 붓는다고 합니다. 모래를 사서 잘게 부순 뒤에 해변에 뿌린다는 것이지요. 갈수록 모래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데, 그 또한 고층 빌딩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산 쪽으로 치달려야 하는데, 빌딩에 막혀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바람의 흐름이 막혀 모래가 쌓이는 대신 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래만 보아도 충분한 교훈이 된다 싶은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빌딩을 세우고 있으니 걱정이 되었던 것이지요.
둘째 날 이른 아침, 아내와 함께 해변을 산책했습니다. 휴가철이 한참 지나서인지 해변은 한산했습니다. 맨발로 모래 위를 걷는 사람, 운동 삼아 달리기를 하는 사람, 서로의 손을 잡고 장난을 치는 연인들, 철 지난 바다는 오히려 한적해서 좋았습니다.
해변 모래를 밟으며 걸어가던 중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사람들의 발자국과 새들의 발자국이 섞여 있었습니다. 신발 자국도 있고, 맨발 자국도 있고, 한 마리인지 서너 마리인지 새들의 발자국도 섞여 있었습니다. 누가 먼저 발자국을 남겼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발자국과 새들의 발자국이 동시에 찍힐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일정한 차이를 두고 같은 자리를 지나간 흔적이 같은 자리에 남았을 뿐이겠지요.
모래 위에 찍힌 서로 다른 발자국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먼저 발자국을 남겼다고 그가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발자국을 남겼다고 발자국을 남긴 자가 땅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물결이 한 번 지나가면 모든 발자국은 지워지고 말 테니까요.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 어느 날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요. 지금이야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얼굴을 붉히기도 하지만, 어느 날 그 모든 것들이 소용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해운대 해변 모래 위에 찍힌 서로 다른 발자국들처럼, 생(生)이라는 바닷가에서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