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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사람 냄새 나는 새해 메시지를

[이규섭 시인님] 사람 냄새 나는 새해 메시지를

by 이규섭 시인님 2019.12.27

엽서나 카드로 새해 인사를 전하던 시절, 연말이면 시골 문방구 앞에도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 판매대가 설치되어 발길을 잡았다. 연하장엔 예쁜 그림과 함께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글귀가 적혀 성탄절 축하와 새해 인사를 겸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여백에는 손 글씨로 상대방 취향을 저격하는 짧은 인사말을 곁들였다. 손 위 분들께는 소박하고 정중한 ‘근하신년(謹賀新年)’, ‘삼가 새해를 축하합니다’라고 인쇄된 한 장짜리 연하장을 보냈다.다정한 친구들에겐 책갈피에 보관했던 단풍잎을 활용하여 카드를 만들고 속지에 마음을 담았다. 우체국 창구에 들러 우표와 함께 씰을 붙여 우체통에 넣는다. 가슴 설레던 추억이다. 손 글씨로 쓴 주소에 우표가 붙은 연하장을 받아 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연말연시면 송구영신의 문자 메시지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디지털 세상이다. 동영상에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주옥같은 글이 물무늬처럼 번진다. 깜찍하고 귀여운 이모티콘이 새해 인사말과 함께 세배까지 한다. 화려한 영상 메시지를 클릭 한 두 번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기계로 찍어낸 듯 영혼 없는 새해 메시지를 받으면 감흥은커녕 시큰둥해진다. 메신저 단톡방을 통해 다중에게 무더기로 보내는 새해 인사는 끝까지 읽는 게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 단톡방을 빠져나갈 수도 지우기도 애매모호하다. 누가 누구를 위해 만든 메시지인지 출처불명의 새해 인사 메시지가 돌고 돈다. 문자 메시지를 받으면 나에게만 보낸 것인지, 누구에게나 보낸 것인지 구분하게 된다. 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이면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답신을 보낸다. 판화로 찍은 듯한 배경에 좋은 말만 가득한 메시지는 감흥이 없으니 무덤덤할 수밖에 없다.
잡코리아가 연초에 새해 인사말 설문조사 결과,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했어요. 새해에도 함께 해요’가 1위(26.7%)로 꼽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12.8%), ‘새해에는 꽃길만 걸으세요’(11.5%)가 뒤를 이었다. ‘새해에는 뜻하는바 모두 이루세요(9.8%), 지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9.0%) 순으로 나타났다.
비호감형 새해 인사로는 어디서 복사해서 붙이는 스팸 같은 새해인사(23.6%)가 1위로 나타났다. 한꺼번에 보내는 단톡, 단체 메시지로 대신하는 새해인사(13.1%), 덕담으로 시작하여 잔소리로 끝나는 훈화형 새해인사(9.8%), 글 한마디 없이 이미지만 덜렁 보내오는 인사(9.5%)가 비호감으로 분류됐다. 새해인사에 진정성이 담겨 있으면 호감, 상투적이면 비호감이다.
내게만 문자 메시지를 보낸 이에게 답신을 할 땐 단조롭지만 배경 없이 문자로 작성한다. ‘기다리던 손자가 태어나 얼마나 기쁜가. 손자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행복한 새해 되기를 바라네’ ‘건강을 지키며 새해는 홀가분하게 살아가세’ 상대방의 입장과 처한 상황, 현재의 심경을 진솔하게 담으면 자연스럽게 호감형 새해 인사가 된다. 맞춤형 메시지를 일일이 작성하려면 품이 든다. 품이 드는 만큼 진정성이 묻어나 사람 냄새가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