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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또 하나의 소리새

[한희철 목사님] 또 하나의 소리새

by 한희철 목사님 2020.02.19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손님으로 북적이던 식당에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고, 다들 설 쇠러 고향을 찾은 듯 도심의 거리가 한산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많은 모임과 행사가 취소되기도 했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현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배를 줄이기도 하고, 성찬을 삼가기도 하고, 예배 시간에도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보다도 바이러스로 인해 두려움의 속도가 더 빠르다 여겨집니다. 달에 착륙하여 발을 내딛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등 인간의 기술은 그 끝이 어디일까 싶을 만큼 놀랍도록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벌벌 떨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도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아프게 확인을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큰 혼란을 겪으며 제게 소중하게 다가온 한 사람이 있습니다. 리원량이라는 의사입니다. 그는 만주족 출신의 의사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외부에 공개한 의사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 경찰은 리원량을 소환하여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올렸다며 경고와 훈계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한 대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번졌을 때, 치료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다가 결국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나이가 34살이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알았을 때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대신 조용히 가족들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그는 안전했을 것이고, 얼마든지 죽음을 면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코앞으로 다가온 위기를 세상에 알렸고, 그 한복판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같은 병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리원량을 생각하면 ‘소리새’가 떠오릅니다. 제가 처음으로 썼던 동화입니다. 새터라 불리는 마을에 전에 없는 폭풍이 닥쳐오자 모든 새들이 새터를 떠납니다. 새터에는 소리새라는 새가 있었는데, 덩치도 작고 쉰 목소리로 노래하는 보잘것없는 새였습니다. 새들이 새터를 떠나갈 때 소리새는 높은 가지 위로 날아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소리새의 노래는 새터를 떠나는 새들의 가슴속에 화살처럼 박혔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새들은 하나둘 새터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소리새의 노래가 마음에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새터를 뒤져 소리새를 찾아낸 새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소리새는 쓰러진 가지 끝에 앙상한 뼈로 남았는데, 소리새의 발목이 칭칭 철사로 묶여 있었습니다. 형편없이 부러진 그의 부리로 보아 철사를 묶은 것은 소리새 자신이었습니다. 그동안 무시했던 소리새의 노래를 다 같이 부를 때, 소리새는 어디론가 다시 날아올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리원량이 남긴 마지막 말 중에는 자신의 묘지명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은 이 한 마디로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他爲蒼生說過話) 그는 제게 또 하나의 소리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