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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꽃길만 걷을 수 있을까?

[강판권 교수님] 꽃길만 걷을 수 있을까?

by 강판권 교수님 2020.03.02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칭찬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칭찬이 적절하지 못하면 칭찬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최근 방송에서 자주 듣는 칭찬 중 하나가 ‘꽃길만 걷길 바랍니다’이다. 얼마 전 길을 가다가 어느 초등학교 교문에 ‘앞으로도 꽃길만 걸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보았다. 학교 당국이 졸업생들에게 보낸 일종의 덕담이다.나는 이 같은 칭찬의 말을 듣거나 볼 때마다 마음이 무척 편하지 않다. 꽃길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아무 고통도 없이 편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지만, 칭찬의 내용은 전혀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칭찬은 진실해야 상대방에게 도움을 준다. 그러나 ‘꽃길만 걸어라’는 칭찬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그냥 던지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생명체의 삶은 꽃길만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같은 칭찬은 칭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삶을 모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걸핏 들으면 칭찬 같은 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욕 같이 들리는 것이 ‘꽃길만 걷길 바랍니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칭찬의 말로 ‘꽃길만을 걷길 바란다’고 하는 말에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선호하는 심리가 숨어 있다. 이 같은 심리는 식물에 대해 꽃만을 강조하는 것과 비슷하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까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고통 없이 피는 꽃은 없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힘든 과정을 이겨내기 때문이다. ‘꽃길만 걷기 바랍니다’는 칭찬은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아가길 바란다는 뜻이지만, 진정으로 상대방의 삶을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다. 정말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정말 상대방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그런 영혼 없는 칭찬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 존재의 삶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삶의 철학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꽃길만 걷기 바랍니다’라는 칭찬은 개인 삶에 대한 간섭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심코 개인의 삶에 간여한다. 이 같은 현상은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에 봉건시대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 세계를 반영한다. 그래서 무심코 던지는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의식 세계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꽃길만 걸어라’도 주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적은 사람에게 주는 칭찬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다른 존재의 삶에 정답을 줄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이 가는 길만이 정답이다. 혹 누군가가 자신만의 정답을 찾다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는 있지만 묻지도 않았는데 답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누군가에게 어떤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은 오만이자 편견이다. 상대방을 향해 ‘꽃길만 걷기 바랍니다’가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가세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