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우리는 모두 곰스크를 그리워한다
[권영상 작가님] 우리는 모두 곰스크를 그리워한다
by 권영상 작가님 2020.03.19
무대는 시골길이다. 길가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머지않아 어둠이 몰려올 듯한 늦은 오후다. 누더기 차림의 부랑자 에스트라공이 자신의 낡은 신발과 씨름한다. 간밤 헤어진 블라디미르가 그 곁에 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소년이 던지고 간 ‘내일이면 고도가 온다’는 말에 미련을 둔다. 고도가 오면 모든 게 잘 될 거라 믿는다. 어쩌면 누더기 옷도 벗어던지게 되고, 음식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날, 소년은 고도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다는 고도를 기다린다.
사무엘 베케트의 극본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고도는 누구인가. 신이라는 이들도 있지만 아니라는 이들 역시 많다. 분명한 건 우리 모두 지금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그들과는 다른 인물이 있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라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그곳을 향해 떠나는 사람이다. 독일 소설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 속 인물, ‘나’가 그다.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 무릎에서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큰다.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 언젠가 나는 그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산다. 드디어 그때가 왔다. 결혼식을 마친 나는 신부의 손을 잡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그들이 살던 마을을 벗어날 즈음 신부인 아내가 말했다.
“우린 모든 것에서 멀어져가는군요.”
아내는 익숙한 것에서 멀어져 가는 일이 마뜩찮았던 것이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질 무렵 기차는 첫 번째 정거장에 섰다. 2시간 뒤면 기차는 떠난다. 나는 아내와 기차에서 내려 낡은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노을을 구경하다가 그만 기차를 놓친다. 나는 다시 곰스크로 가는 기차 요금을 벌기 위해 일한다.
간신히 기차 요금은 마련되었다. 소문과 함께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나는 짐을 꾸려 기차에 오른다. 그런데 뒤따라 와야 할 아내가 뜻밖에도 안락의자를 힘겹게 들고 나왔다. 아내는 안락의자를 가져가지 않는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안락의자를 싣고 갈 비용이 없는 나는 하는 수 없이 기차에서 내린다.
떠나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괴로워한다. 오로지 곰스크만을 생각하느라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결국 나는 마을로 돌아오고, 마을학교 교사라는 일자리와 예쁜 정원이 딸린 사택과 안정된 가정을 얻는 대신 곰스크로 가는 일을 뒤로 미룬다.
오늘도 멀리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 소리가 들려오고, 그 찢어지는 듯 슬픈 기적 소리가 울리다가 사라진다. 곰스크는 어디에 있을까. 블라드미르가 기다리는 고도는 또 누구인가.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 지금 나로부터 먼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기 이르거나 그가 내게로 오기만 하면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들이다.
우리는 모두 곰스크를 그리워하며 산다. 또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산다. 어찌 보면 이 모두 생활에 아무 소용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간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살까.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소년이 던지고 간 ‘내일이면 고도가 온다’는 말에 미련을 둔다. 고도가 오면 모든 게 잘 될 거라 믿는다. 어쩌면 누더기 옷도 벗어던지게 되고, 음식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날, 소년은 고도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다는 고도를 기다린다.
사무엘 베케트의 극본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고도는 누구인가. 신이라는 이들도 있지만 아니라는 이들 역시 많다. 분명한 건 우리 모두 지금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그들과는 다른 인물이 있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라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그곳을 향해 떠나는 사람이다. 독일 소설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소설 ‘곰스크로 가는 기차’ 속 인물, ‘나’가 그다.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 무릎에서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큰다.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 언젠가 나는 그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산다. 드디어 그때가 왔다. 결혼식을 마친 나는 신부의 손을 잡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그들이 살던 마을을 벗어날 즈음 신부인 아내가 말했다.
“우린 모든 것에서 멀어져가는군요.”
아내는 익숙한 것에서 멀어져 가는 일이 마뜩찮았던 것이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질 무렵 기차는 첫 번째 정거장에 섰다. 2시간 뒤면 기차는 떠난다. 나는 아내와 기차에서 내려 낡은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노을을 구경하다가 그만 기차를 놓친다. 나는 다시 곰스크로 가는 기차 요금을 벌기 위해 일한다.
간신히 기차 요금은 마련되었다. 소문과 함께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도착했다. 나는 짐을 꾸려 기차에 오른다. 그런데 뒤따라 와야 할 아내가 뜻밖에도 안락의자를 힘겹게 들고 나왔다. 아내는 안락의자를 가져가지 않는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안락의자를 싣고 갈 비용이 없는 나는 하는 수 없이 기차에서 내린다.
떠나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괴로워한다. 오로지 곰스크만을 생각하느라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결국 나는 마을로 돌아오고, 마을학교 교사라는 일자리와 예쁜 정원이 딸린 사택과 안정된 가정을 얻는 대신 곰스크로 가는 일을 뒤로 미룬다.
오늘도 멀리서 곰스크로 가는 기차 소리가 들려오고, 그 찢어지는 듯 슬픈 기적 소리가 울리다가 사라진다. 곰스크는 어디에 있을까. 블라드미르가 기다리는 고도는 또 누구인가.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 지금 나로부터 먼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기 이르거나 그가 내게로 오기만 하면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들이다.
우리는 모두 곰스크를 그리워하며 산다. 또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산다. 어찌 보면 이 모두 생활에 아무 소용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간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