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강판권 교수님] 꽃, 멀미하다

[강판권 교수님] 꽃, 멀미하다

by 강판권 교수님 2020.04.13

세계인들이 코로나19로 봄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한국의 봄은 예년처럼 화려하다. 개나리꽃, 벚꽃, 복사꽃, 배꽃, 자두꽃, 영산홍꽃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을 파고든다. 길을 걷다 꽃을 보면 멀미할 지경이다. ‘꽃멀미’는 자동차 멀미, 배 멀미, 비행기 멀미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올해는 매년 봄철이면 누구나 즐겼던 꽃멀미마저 쉽지 않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긴 꽃멀미는 이른바 명소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봄철마다 각 지역의 명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북적거렸다. 올해는 지자체마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소를 찾아서 꽃멀미를 즐길 수 없고, 즐겨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간의 방식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꽃멀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코로나19와 관계없이 꽃멀미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꽃을 관찰하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안의 화분이나 가까운 공원에서 꽃을 관찰하면 얼마든지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매년 봄마다 꽃멀미를 즐겼던 벚꽃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 주변 어디든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주변에 살고 있는 벚나무에 꽃이 피면 대충 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세하게 보면 간단히 꽃멀미를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 도시에서 살고 있는 벚나무는 사람들이 그냥 벚나무라 부르지만 사실은 대부분 왕벚나무다. 자신의 주변에 살고 있는 벚나무가 왕벚인지 벚나무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왕벚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지만 벚나무는 꽃과 잎이 동시에 피고 돋는다. 왕벚나무는 꽃도 벚나무보다 풍성하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가지가 땅으로 처진 벚나무를 수양 혹은 능수벚나무라 부른다. 능수벚나무도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벚나무 중 잎과 함께 꽃이 피는 산벚나무는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을 만드는데 사용한 나무로 유명하다.
왕벚나무는 일본의 나라꽃이지만 자생지는 우리나라이다. 사쿠라라고 부르는 왕벚나무가 우리나라 제주도와 해남에 자생하는 사실을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왕벚나무가 우리나라에 제주도에 자생하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프랑스 신부 에밀타케이다. 에밀타케 신부는 대구에서 생활하다가 돌아가신 분이다. 그래서 대구 가톨릭 교구가 위치한 성모당에는 에밀타케 신부가 심은 왕벚나무가 살고 있다. 더욱이 대구의 어느 신부는 경북 청도에 에밀타케를 기념하는 연구소를 열었다.
왕벚나무는 장미과라서 꽃잎이 다섯 장이다. 다섯 장의 꽃잎마다 꽃받침이 있다. 꽃받침은 꽃잎이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꽃받침은 꽃이 수정을 한 후 떨어진 후에도 달려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꽃잎이 떨어지면 왕벚나무를 찾지 않는다. 그런데 꽃잎이 떨어진 뒤의 꽃받침도 꽃잎만큼이나 아름답다. 꽃받침은 꽃 진 자리에 열매가 생길 때까지 자기 역할을 잊지 않는다. 벚나무의 열매를 버찌라고 부른다. 아주 작은 버찌가 꽃받침에 싸여 있다가 잎이 돋으면 꽃받침은 그때야 땅에 떨어진다. 버찌가 붉은색에서 까맣게 익으면 새들이 먹거나 땅에 떨어진다. 이 같은 왕벚나무의 모습을 관찰하면 단순히 꽃잎만 보던 시절과는 다른 경험을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