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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코로나는 힘이 세다

[이규섭 시인님] 코로나는 힘이 세다

by 이규섭 시인님 2020.04.24

코로나 바이러스의 힘은 세다. 우한에서 남미까지 지구촌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영국 황태자와 총리부터 요양원 노인, 노숙자, 갓난 아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침투한다.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이는가하면 세계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동시 패션을 연출한다. 부처의 생신을 두 번 치르게 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까지 쥐락펴락한다.
석가탄신일은 음력 사월 초파일인 4월 30일지만 봉축법요식은 음력 윤사월 팔일인 5월 30일로 옮겨 봉행키로 했다. 코로나 감염예방과 확산방지를 위한 특단의 배려다. 불교계가 대승적 차원에서 용단을 내렸다.
부처의 탄신지인 네팔 룸비니(Lumbini)를 방문한 것은 9년 전이다. 남부 테라이 지방에 위치한 룸비니는 대부분 수도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를 거쳐 가는데, 거꾸로 인도 바라나시에서 국경을 넘어 찾아가 인상 깊다. 바라나시에서 네팔 국경 고락푸르까지는 380㎞에 12시간 넘게 걸렸다. 노면상태가 좋지 않아 버스가 털털거리는 데다 여행 삼일 째부터 시작된 배탈로 여행 내내 고통을 겪었다. 소나울리 국경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럽다. 가이드는 국경지대에서 사고가나면 처리가 곤란하니 버스 안에서 내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차창 밖으로 바라보니 네팔 지역 경비요원이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들어오는 남루한 행색의 주민 쌀자루를 빼앗아 칼로 찢어 바닥에 흩어버린다. 네팔 사람들은 인도에서 쌀이나 생필품을 싸게 사와서 판다고 한다. 통관세를 물지 않고 상습적으로 들여오는 사람들을 단속하는데 고압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법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귀한 쌀을 흩어버리는 것은 가난한 나라에서 할 짓은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횡포다.
버스 안에서 1시간 기다린 끝에 입국수속이 끝났다. 인도 출국신고서를 작성한 뒤 사진과 함께 25달러를 내고 네팔 입국비자를 발급 받았다. 인도-네팔사람들은 비자 없이 출입국이 가능하다. 룸비니에 도착하니 어둠이 짙게 깔렸고,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지친 몸을 눕혔다.
룸비니의 아침은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숲을 헤치고 부처의 탄생지 ‘성원지구(Sacred Garden Zone)’로 향했다. 기원전 623년 카필라 왕국의 마야데비 왕비는 카필라성에서 150리쯤 떨어진 친정 콜리성(지금의 데비다하)에서 몸을 풀려고 길을 떠났다. 친정으로 가는 길목 룸비니에서 산통이 왔다. 그렇게 룸비니에서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났고, 그가 훗날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경내에는 마야부인이 산기를 느껴 붙잡았다는 보리수와 출산 후 목욕을 했다는 연못과 옛 사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기원전 249년 독실한 불교도였던 인도 마우리아의 세 번째 통치자 아소카 왕이 이곳을 방문하여 기념으로 석주를 세우고 비문을 남겼다. 석주에 새긴 비문으로 룸비니는 전설의 땅에서 싯다르타가 탄생한 성지임을 확인시켜 줬다. 폐허로 방치되었으나 1895년 독일 고고학자 포이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윤사월 초파일은 한 달 가량 남았다. 그 땐 힘세 바이러스도 무릎을 꿇게 하고 활기찬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