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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이유

[한희철 목사님]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이유

by 한희철 목사님 2020.04.29

2007년 독일에서의 목회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 세 아이 모두 한창 공부하는 학생인지라 아이들만 두고 돌아왔습니다. 고3이었던 큰딸에게 남동생 둘을 맡기고 온 것이니, 아비로서는 모진 선택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없이도 잘 지내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라와 국경을 따로 가리지 않아 유럽에서도 크게 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진국이라 자부하다가 무방비로 당하다보니 충격과 당혹감은 다른 나라들보다도 훨씬 더 크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통화를 했더니 독일도 일상의 삶이 멈춰선 상태였습니다. 학교도 문을 닫았고, 회사도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의 걱정은 한결같은 것이겠지요, 건강한지 먹을 것은 있는지 등등을 물었습니다.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안에 머물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던 아이들이 대답 끝에 불쑥 한 말이 있었습니다. 집에 휴지가 5롤 밖에 안 남았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만 지내는데 휴지가 5개 밖에 안 남았다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얼른 마트에 가서 사야지.” 했더니 “마트에 가도 진열대가 텅 비었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트에서 휴지를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텅 빈 진열대를 보여주던, 뉴스에서 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보내줄까?” 물었더니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습니다. 무슨 휴지까지 한국에서 보내느냐며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통화를 할 때마다 화장지 구입 여부를 물었는데, 개수만 점점 줄어들 뿐 구하지 못했다는 같은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내에게 집에 있는 화장지 수를 물었더니 아직은 쓸 만큼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금 더 구입해야 되지 않느냐 했더니 괜한 걱정이라며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도 얼마든지 배송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사재기를 볼 수가 없습니다. 화장지와 물 야채와 우유 식품들이 진열되기가 무섭게 동이 나고, 서로 갖겠다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외국의 현실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똑같은 상황을 겪으면서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빠뜨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싶습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입니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우리도 잘 몰랐던 우리의 진짜 모습은 이토록 아름답고 따뜻하고 대견한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지만 얼마든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일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