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대표님] 긍정은 끝내 배신하기도 하는가
[김재은 대표님] 긍정은 끝내 배신하기도 하는가
by 김재은 대표님 2020.05.18
이른 아침 비 내리는 미타사에 들렸다. 우거져가는 신록과 초파일 오색 연등이 눈이 시리도록 눈부시게 잘 어울렸다. 이런 시절을 그대로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내 삶이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 한 방울이 내리는 비와 섞였다.
그것도 잠시, 마음은 현실로 가속도를 붙여 돌아온다. 길어져가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삶의 적나라한 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전 같으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것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삶을 파고든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캐내고 오히려 주인 행세하는 격이다.
어떻게든 직접 뛰어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한 생경한 환경과 삶의 고통에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제 한숨 쉴 기운도 남아있지 않다며 식어가는 목소리에 초점 잃은 눈동자가 뒤엉킨다. 순간 ‘인생은 고해(苦海)’라던 성인의 말씀이 봄바람 한 줄기를 타고 스쳐 지나간다.
이러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블랙홀처럼 빠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초조함과 조바심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 내 삶을 살핀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 내리는 미타사의 아름다운 풍광을 누리는 복은 어떤가. 코로나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나라들도 많지만 우리는 큰피해 없이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헌신과 희생으로 공동체의 건강과 안위를 지켜내는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은 또 어떤가.
바로 긍정이다.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하는 것, 순간 든든해진다. 하지만 긍정은 ‘그냥 좋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그 무엇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긍정이란 그럼에도 일상의 나의 생각에 깨어있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니 즐겁고 좋은 일도 힘들고 가슴 아픈 일도 다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 속에서 내가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기쁨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힘듦과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공이 수많은 실패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긍정도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수많은 부정, 아니 희로애락이 뒤엉켜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긍정이란 내 스스로 나를 지켜가는 마음이지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긍정주의는 개인을 넘어서 전 세계에 닥친 위기의 징후에 눈 감게 만들어 재앙에 대비하는 힘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도 있다. 나아가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릴 수도 있고, 세상의 많은 병폐를 '긍정적이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려는 의도에도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긍정, 극단적인 긍정은 배신의 얼굴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삶의 자세가 내 발 등을 찍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이렇듯 긍정은 나에게 힘을 주고 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긍정의 늪에 빠지면 오히려 절망과 좌절에서 허우적댈 수도 있다.
그래서 긍정은 희망고문이 아니라 ‘현실의 직시’가 되어야 한다. 어찌하든 누가 뭐래도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일어난 진짜 긍정은 힘이 세다는 것은 인정, 생각해보니 나는 꽤 긍정적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아니면 말고.
그것도 잠시, 마음은 현실로 가속도를 붙여 돌아온다. 길어져가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삶의 적나라한 모습이 눈에 밟힌다. 이전 같으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던 것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삶을 파고든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캐내고 오히려 주인 행세하는 격이다.
어떻게든 직접 뛰어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로 인한 생경한 환경과 삶의 고통에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제 한숨 쉴 기운도 남아있지 않다며 식어가는 목소리에 초점 잃은 눈동자가 뒤엉킨다. 순간 ‘인생은 고해(苦海)’라던 성인의 말씀이 봄바람 한 줄기를 타고 스쳐 지나간다.
이러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블랙홀처럼 빠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초조함과 조바심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 내 삶을 살핀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 내리는 미타사의 아름다운 풍광을 누리는 복은 어떤가. 코로나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나라들도 많지만 우리는 큰피해 없이 무탈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헌신과 희생으로 공동체의 건강과 안위를 지켜내는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은 또 어떤가.
바로 긍정이다.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하는 것, 순간 든든해진다. 하지만 긍정은 ‘그냥 좋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그 무엇도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긍정이란 그럼에도 일상의 나의 생각에 깨어있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니 즐겁고 좋은 일도 힘들고 가슴 아픈 일도 다 내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 속에서 내가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기쁨이라는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힘듦과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공이 수많은 실패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긍정도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수많은 부정, 아니 희로애락이 뒤엉켜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긍정이란 내 스스로 나를 지켜가는 마음이지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긍정주의는 개인을 넘어서 전 세계에 닥친 위기의 징후에 눈 감게 만들어 재앙에 대비하는 힘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도 있다. 나아가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릴 수도 있고, 세상의 많은 병폐를 '긍정적이지 못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려는 의도에도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긍정, 극단적인 긍정은 배신의 얼굴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와 삶의 자세가 내 발 등을 찍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이렇듯 긍정은 나에게 힘을 주고 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긍정의 늪에 빠지면 오히려 절망과 좌절에서 허우적댈 수도 있다.
그래서 긍정은 희망고문이 아니라 ‘현실의 직시’가 되어야 한다. 어찌하든 누가 뭐래도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일어난 진짜 긍정은 힘이 세다는 것은 인정, 생각해보니 나는 꽤 긍정적인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