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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삶에 향기가 나려면

[이규섭 시인님] 삶에 향기가 나려면

by 이규섭 시인님 2020.05.28

빨간 넝쿨장미가 그림처럼 피어 향기를 뿜는다. 이웃집과 경계인 시멘트 담장 위, 아침나절 반짝 햇볕이 드는 열악한 환경인데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붉은 함성을 내지른다. 아기 울음소리를 내며 담장을 넘나들던 도둑고양이를 막아주니 금상첨화다. 줄장미는 오월 하순에서 유월 초까지 절정을 이루며 꽃등을 밝힌다.
붉은 장미는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요염한 향기에 멀미가 난다. 이화은 시 ‘줄장미’에 잘 녹아 있다. ‘입술이 새빨간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손톱이 긴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아슬아슬 건너고 있는/ 아버지의 무수한 여자들’이 추파를 던지는 장밋빛 유혹이다. 한량들은 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들을 좋아했고 그런 남편을 둔 여염집 아낙의 속은 새빨갛게 타들어갔다.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서정주 시 ‘선운사’)과는 격이 다른 고혹적인 유혹이다.
장미 향은 매혹적으로 짙다. 300종의 향기 분자를 품었다는 장미는 향기의 여왕이다. 조향사들은 장미향으로 시작하여 장미향으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장미 향을 이용하여 다양한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어 여심을 유혹한다.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의 프란시스코 수도원 약국에서는 14세기부터 지금까지 장미가 그려진 크림을 팔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쇼핑 코스가 된 것도 장미의 유혹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가시가 있는 것은 해충이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잎을 갉아먹는 피해를 막으려는 방어책이다. 모든 식물은 병원균이나 곰팡이, 해충의 접근을 막으려 화학물질을 뿜어낸다. 달콤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보호본능의 발산이다. 김승희 시인은 ‘장미와 가시’에서 ‘삶은 가시 장미인가, 장미 가시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 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 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을 해주오./ 삶은 가시 장미인가 장미 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삶은 장미꽃향기처럼 늘 아름다울 수도 없고 장미 가시 같은 생의 가시밭길만 걷는 것도 아니다. 가시에 찔린 손끝에 빨간 피멍이 맺히듯 스스로의 삶에도 희망의 꽃망울이 맺히기를 기대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가시 달린 줄기에 꽃이 피고 향기가 익어가듯 장미와 가시는 공존관계다. 마음에 가시를 품으면 가시 돋친 말이 나오고 마음에 향기를 품으면 삶에도 향기가 난다. 어떤 향기를 품고 사는가에 따라 인생의 향기도 달라진다. 가시넝쿨도 아름다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긍정의 가치관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