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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가장 무서운 거짓말

[한희철 목사님] 가장 무서운 거짓말

by 한희철 목사님 2020.09.16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있었습니다. 자정 무렵부터 시작된 폭동과 약탈은 서너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흥분한 사람들 중에는 약탈자가 되어 각종 매장의 창문을 깨고 물건을 훔쳐 간 이들도 있었습니다. 명품 상점이 모여 있어 ‘환상의 1마일’이라고 불리는 쇼핑 중심지가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오랫동안 쌓여온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계기도 있었습니다. 경찰이 무고한 10대 흑인 소년을 죽였다는 헛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총을 든 남성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남성이 총을 쐈고, 경찰이 응사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총상을 입었던 것인데, 잘못되고 과장된 소식이 한순간에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져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단순한 실수가 크게 번진 것인지, 의도적인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잘못된 말 하나가 일으킬 수 있는 폐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일이었습니다.
구약성서 <욥기>를 읽다 보면 뒷부분에 이르러 엘리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욥은 물론 욥의 세 친구들보다도 나이가 어린 사람입니다.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를 싸잡아 비난합니다.
엘리후는 욥을 비난하면서 욥이 한 말을 인용합니다. “당신은 이런 말을 했지요.” 일일이 확인 과정을 거쳐 신중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엘리후로서는 자기가 하는 말의 정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인용하고 있는 말을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됩니다. 엘리후는 욥의 말을 인용하면서 욥이 한 말을 슬쩍 비틀기도 하고, 욥의 의중을 왜곡하기도 하고, 자기 마음대로 욥의 판단을 편집하기도 합니다.
엘리후가 인용하는 욥의 말은 다 잘못된 내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 맞는 말도 아니라는 점에서 생선 가시 목에 걸리듯 몹시 마음에 걸립니다. 엘리후의 말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누가 봐도 헷갈릴 것이 없는 뻔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누가 뻔한 거짓말에 속겠습니까?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을 담고, 거기에 얼마큼의 거짓을 섞어 버무린 거짓말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럴듯한 거짓말입니다. 거짓말 속에 담긴 얼마간의 사실로 인해 많은 이들은 거짓을 사실 혹은 진실로 받아들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있겠어?’ 하면서 말이지요.
정말 나쁜 것은 거짓을 말하는 이들이 자명한 거짓말보다도 그럴듯한 거짓말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슬쩍 거짓을 섞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감출 것은 감추고 얻고 싶은 것을 얻어내는 비열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두 눈을 밝게 뜨고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그럴듯한 거짓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