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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웃는 낯엔 침 못 뱉는 법이니

[한희철 목사님] 웃는 낯엔 침 못 뱉는 법이니

by 한희철 목사님 2020.10.21

김포 초입에 숨겨진 듯 자리 잡은 ‘보름산 미술관’에 가면 다른 곳에서는 쉬 볼 수 없는 귀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불편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오래된 집들을 허물고 번듯한 집들을 지을 때, 사라져선 안 될 것을 소중히 모은 결과물입니다. 다름 아니라 망와(望瓦)입니다.
참나무가 창문 밖으로 가까이 선 미술관 2층으로 오르면 언제라도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주인 내외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망와를 수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집을 허물며 망와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를 않았다니, 그 가치를 일찍부터 알아본 분들의 수고가 있어 오늘 우리는 한곳에 모인 망와를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용마루의 끝에 끼어 그 마구리를 장식하는 암막새를 망와라 하는데, 망와의 생김새는 다양합니다. ‘福’이나 ‘壽’라는 글자를 새기기도 했고, 꽃이나 도깨비 모양을 새기기도 했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기기도 했습니다.
망와 중 그중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사람 얼굴입니다. 상투를 틀어 남자임을 구별하기도 했고, 눈과 이마에 반짝이는 돌조각을 박아놓아 어둠 속에서 틈탈지도 모르는 악귀의 침입을 막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 얼굴 중에서도 그중 많이 보이는 것이 웃는 얼굴입니다. 보기만 해도 덩달아 웃음이 나오는 해학적인 표정들이지요. 이 집에 살며 웃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암막새에 해당하는 망와와 대조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수막새’입니다. 수막새는 수키와의 끝에 달린 부분으로, 빗물이 흘러내리는 면이 있어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합니다. 어디에나 아파트가 흔한 시절에 사는 우리에겐 낯선 일이지만 기와지붕은 암키와와 수키와로 덮고 처마 끝에서 끝막음을 하는데, 암키와로 막은 것은 암막새, 수키와로 막은 것은 수막새라 불렀던 것입니다.
수막새 중에서도 유명한 수막새가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하, 이것!” 하며 대번 알아볼 만한 수막새입니다. 경주 영묘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연꽃무늬나 도깨비를 새긴 일반적인 수막새와는 달리 가만히 웃는 얼굴 무늬를 새겨 흔히 '신라의 미소'라고도 불리는 수막새입니다. 한쪽이 깨진 온전하지 못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이미 충분하고도 남아 2018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2010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邪)의 용도라면 암막새와 수막새에 험상궂고 사나운 도깨비를 새기는 것이 제격일 것입니다. 당연해 보이는 생각을 물리고 암막새와 수막새에 밝게 웃는 사람 얼굴을 새겨 넣은 옛사람들의 마음이 넉넉함으로 다가옵니다. 맞서 싸우는 대신 푸근한 웃음으로 악귀를 무장해제 시키려 했던 것이겠지요.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 법, 암막새와 수막새에 새겨진 웃음을 우리 마음에도 새겨둘 일이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