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한희철 목사님] 허수아비 후보

[한희철 목사님] 허수아비 후보

by 한희철 목사님 2020.11.04

얼마 전 멀리서 들려온 한 소식을 접하며 재미있게 웃은 일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작은 마을 포발리키노에서 있었던 시장 선거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현직 시장인 니콜라이 록테프는 선거를 앞두고 자신과 맞서 선거를 치를 상대 후보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무도 나서려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록테프는 시청 관계자와 공산당 당원 등에게 선거에 나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거절했던 것은 지난번 선거에 출마했다가 참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록테프의 눈에 든 사람이 있었는데, 시청에서 4년간 청소부로 일을 해온 마리나 우드곳스카야였습니다.
서른다섯 살인 우드곳스카야는 일용직 노동자인 남편과 두 명의 십 대 자녀와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 뒷마당에 닭과 오리와 토끼와 거위를 기르는 등 농사를 좋아했고요.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그가 후보로 나선 것은 자신의 직장 상사인 시장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드곳스카야를 후보로 내세운 록테프의 의도는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허수아비 후보를 내세워서 손쉬운 승리를 거두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자기 의도대로 정치 문외한인 주부를 후보로 내세운 록테프 시장은 당연히 당선을 확신했을 것입니다. 땅 짚고 헤엄치는, 식은 죽 먹기라고 여겼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우드곳스카야가 시장으로 당선된 것이었는데, 유권자로부터 무려 62%의 지지를 얻어 당선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놀랄만한 만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정치 고문들이 국가 정치와 지역 정치를 면밀히 살펴 그럴듯하고 안전하게 패자 역할을 할 인재를 스카우트한다고 합니다. 패자 역할을 할 들러리를 왜 내세우는 걸까 싶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단일 후보가 나서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선거가 조작되기 쉬운 러시아에서는 선거가 민주적이었다는 환상을 만들 필요가 있기에 들러리 후보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선거관리위원회 측의 설명에 따르면 포발리키노 주민들이 우드곳스카야를 뽑은 것은 ‘이제는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드곳스카야는 평소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민들과의 관계가 원만했다는 것입니다. 시장이 된 우드곳스카야는 포발리키노 사람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가로등을 마을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니, 마을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까지 밝아질 일이다 싶어 덩달아 즐거워집니다.
정신을 빠짝 차리지 않으면 허수아비 후보에게도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안다면 지금과는 사뭇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일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