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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덕수궁서 숨은그림찾기

[이규섭 시인님] 덕수궁서 숨은그림찾기

by 이규섭 시인님 2020.11.13

전통과 근대가 어우러진 덕수궁에 문화잔치가 한창이다. 코로나로 발목이 묶이고 마스크로 짜증 나고 답답한 심정을 예술의 향기로 숨통을 튼다. 덕수궁에서 쇼팽을 만났고, 전통과 현대예술이 어우러진 ‘고궁무악전(古宮舞樂傳)’의 향연을 즐겼으니 가는 가을이 아쉽지만은 않다.
판소리 명창과 전통춤 대가, 퓨전국악을 이끄는 젊은 음악인, 현대무용 스타들을 고궁에서 만난 건 행운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덕수궁 중화전 앞에 특별 무대를 마련했다. 2009년 ‘고궁명무전(古宮名舞傳)’에 이어 11년 만에 덕수궁에서 두 번째로 성사된 특별 프로젝트로 지난 5일부터 나흘간 고궁을 우아하게 수놓았다.
국악인 박애리의 사회로 진행된 첫날 공연엔 올해 국가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지정된 김영자 명창이 나와 ‘심청’가 한 대목을 구성지게 불렀다. 김일구 명인의 아쟁 연주는 애간장을 녹이듯 음색이 애절하다. 채상묵 보유자의 ‘승무’는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양길순 보유자의 살풀이춤사위엔 한이 서렸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지낸 김지영 교수는 토슈즈를 벗고 노름마치의 국악 장단과 구음에 맞춰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는 춤사위를 펼쳐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와는 별도로 ‘아트 플랜드 아시아 2020전’이 이달 22일까지 덕수궁에서 열린다. 김환기, 남관, 박서보, 박수근, 김창열, 윤형근,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 주요 작가들과 강서경, 김희천, 안정주+전소정, 양혜규, 이불, 차재민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인 동시대 작가들이 참여한다. 로이스응, 호루이안, 호추니엔 등 해외 작가 3명을 포함해 33팀의 작품들을 궁궐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전시해 놓았다.
덕수궁을 누비며 숨은 그림을 찾는 듯한 묘미가 감흥을 더한다. 덕수궁의 목조2층 건축물 석어당 대청마루엔 설치미술가 이불 씨의 대형 조각 ‘키아즈마’로 채워 놓았다. 기기묘묘한 형상이라 난해하다. ‘세포분열에서 염색체가 교차하는 현상 ’키아즈마‘를 통해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고,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생명체를 제시’했다는 설명문을 읽어봐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앞뒤가 훤히 개방된 즉조당엔 피고 지는 모습이 각기 다른 열다섯 송이의 장미 사진을 빗금처럼 세워 놓았다. 연인에게 바치는 장미 한 송이의 집합장 같다. 정희승 사진작가의 ‘Rose is a rose is a rose’ 연작이다. 궁궐 내 굴뚝과 소화전 원형을 대리석 판재로 재현한 설치미술가 최고은 씨의 작품은 미술품인지 궁궐의 일부인지 헷갈린다. 서울정동동아시아예술제위원회와 중구청이 주최한 궁궐 전시는 코로나 사태로 실내 전시장 물색이 어려워지면서 나온 아이디어라는데 신선하고 기발하다.
덕수궁 돌담 주변엔 은행잎이 노란 융단을 깔아놓았다. 계절이 바뀌는 교차점에 서면 사색 또한 깊어진다. 내 마음속에 숨겨놓은 생각은 무엇인지, 숨은 그림을 찾듯 꺼내 스스로를 반추해본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