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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순리를 따르다

[한희철 목사님] 순리를 따르다

by 한희철 목사님 2020.12.02

11월이라는 숫자는 잎을 모두 떨군 나무를 생각하게 합니다. 빈 가지로 서 있는 겨울나무를 말이지요. 어느새 나무들이 옷을 벗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였던 고운 옷을 벗고 빈 가지로 서 있습니다. 우리 곁에 서 있는 나무는 여러 면에서 좋은 스승이 됩니다. 아무 말 없이도 많은 것을 가르치고, 우리의 삶과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무엇보다 나무는 자기가 선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라 해도 그곳에 뿌리를 내립니다. 왜 눈에 들지 않는 곳이냐고 원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비탈진 위험한 곳에 섰다고 투덜대지도 않습니다. 내가 선 곳이 어디건 그곳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길임을 나무는 잘 압니다.
다른 나무를 부러워하여 주눅 드는 일이 없습니다. 키가 작아도, 볼품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잎이 작다고,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포기하듯 시들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으로 서서 숲을 이룹니다.
나무는 위로 자라난 만큼 아래로 뿌리를 내립니다. 다른 이들이 본다고 위로만 자라지 않습니다. 위로 자란 만큼 아래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결국은 바람에 쓰러지고 만다는 것을 나무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래로 뻗은 뿌리보다 더 높이 자라지 않기 위해 어쩌면 나무는 늘 뿌리를 살필지도 모릅니다.
말없는 물러서는 모습에도 마음이 갑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깔이라 해도, 나무는 자신을 으스대지 않습니다. 한 가지 색을 고집하는 나무를 고루하다고 무시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눈길이 자신들의 빛깔에 감탄으로 머물 때, 서둘러 자리를 비킵니다. 나만 보지 말고 늘 푸른 나무를 보라고, 잠시 아름다운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정말로 어려운 것은 늘 푸른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자신을 비우는 모습은 경건합니다.
떠나기 전 자신의 모습을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이는 모습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뭇 생명의 길, 나무도 그 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받은 은혜가 얼마인데 어찌 하찮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느냐는 듯, 나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지닙니다. 떨어지기 전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매달린 나뭇잎에는 나무의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거역하지 말고 때를 따르라는 당부는 얼마나 그윽한지 놓치기가 십상입니다. 누가 기다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준비를 하고, 다들 감탄을 하며 자신에게 눈길을 줄 때에도 으쓱하는 마음으로 떠날 때를 미루지 않습니다.
하늘이 정한 순리를 따르며 그것이 순한 삶이라고, 그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그 당연함이 거룩한 것이라고 일러주는 말없는 가르침을 나목의 계절에 마음에 새깁니다. 부디 억지가 없기를, 어색하고 가벼운 원망이 없기를, 언제까지나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기를, 덩달아 마음에 새기는 가르침이 적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