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나는 삼식 세끼
[권영상 작가님] 나는 삼식 세끼
by 권영상 작가님 2020.12.10
나는 삼식 세끼다. 삼식 세끼, 말 그대로 하루 세 끼 꼭꼭 챙겨 먹는 남자다. 밥 한 끼라도 거를라치면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전전긍긍한다. 밥 중독이다. 안 먹으면 답답하고, 불안하고, 어지럽고, 혈압이 떨어진다.
아침에 아내가 길 건너 언니 집에 간다며 나선다.
“김장하는 거 도우러 가니까, 점심에 전화하면 밥 먹으러 와.” 그런다.
“아, 안 돼! 나 바빠!”
나는 그렇게 의기양양 소리치지만 아내는 안다. “안 먹으면 혈압 떨어지잖아. 괜찮어. 언니한테 당신 혈압 이야기해 놓을 테니까.” 그러고 간다.
배고프긴 좀 이른 시간인데, 벌써 전화가 온다.
처형이다. “얼른 와요. 보쌈해 놨으니 부끄러워 말고. 얼른요!” 그런다.
나는 하던 일을 놓고 일어선다. 안 그래도 내심 가고 싶었다. 가고 싶은 데는 점심도 점심이지만 사람들이 그리워서다. 처형도 보고, 손위 동서도 만나보고, 김장하러 왔다는 동서의 장성한 두 아들과 젊은 두 며느리.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서의 손자. 뭔 일 있을 때마다 만나온 이들이니 식구처럼 보고 싶다.
그이들도 또 그이들이지만 무엇보다 집을 나선다는 것이 좋다. 오래 다녀 친숙한 그 길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발을 끊고 살아 낯설 게 느껴지는 처형 댁으로 가는 길.
밥도 먹고, 사람도 보고, 저들 이야기도 듣고, 웃고, 싱거운 소리도 하고, 생각만 해도 참 좋다. 코로나19 이후로 나는 꼬박 집에 박혀 오직 밥 먹는 일이 내 인생의 국정 목표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 먹고, 점심에 점심밥 먹고, 저녁에 저녁밥 먹고.
처음엔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미안했다. 사람이 하루 종일 밥이나 먹는 소나 돼지 같았다. 책장이나 넘기고 잡지도 보는데, 안다 하는 머릿속은 점점 텅텅 비어가고,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점점 게을러진다. 그게 요즘 삼시세끼 나다.
“밥 먹어! ”아내가 식탁에 밥 차려놓고 부를 때면 나는 내가 밥이나 먹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려고 일부러 방에 박혀 꾸물댄다. “내 말 안 들려?” 그럴 때까지 일부러 꾸물댄다. 그렇게 꾸물대는 내 속을 아내가 모를 리 없다. 아내는 나직하지만 아주 위엄 있게 “그럼, 도로 집어넣는다!” 그런다. 위협 아닌 위협이다. 식탁 위의 밥을 철수시키겠다는 말이다.
“미안해할 거 없어. 코로나 땜에 세상 모든 남자들이 삼식이가 됐대.”
못 이기는 척 밥 먹는 날 보고 아내가 위로한다.
아내는 또 어디서 들었다며 껌딱지 이야기를 한다.
슈퍼 갈 테니 오늘은 제발 따라오지 말고 집에 혼자 있어요. 그러고 아내가 슈퍼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더란다. 나 거기 가면 안 될까?
그런 전화 때문에 요즘 아내들 신경질 나 죽겠다는 거다. 슈퍼 갈 때마다 따라가는 날 들으라는 소린지 껌딱지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가슴이 뜨끔하다. 거기다가 나는 겁 없는 삼식세끼다. 삼식이는 아무나 하나. 밥투정을 말아야 하고, 주는 대로 먹고, 맛없어도 맛있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와, 잘 먹었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설거지에 임해야 한다.
처형 댁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삼식세끼지만 당당해지고 싶다. 내가 존심을 무릅쓰고 밥을 챙겨 먹어 우리나라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아침에 아내가 길 건너 언니 집에 간다며 나선다.
“김장하는 거 도우러 가니까, 점심에 전화하면 밥 먹으러 와.” 그런다.
“아, 안 돼! 나 바빠!”
나는 그렇게 의기양양 소리치지만 아내는 안다. “안 먹으면 혈압 떨어지잖아. 괜찮어. 언니한테 당신 혈압 이야기해 놓을 테니까.” 그러고 간다.
배고프긴 좀 이른 시간인데, 벌써 전화가 온다.
처형이다. “얼른 와요. 보쌈해 놨으니 부끄러워 말고. 얼른요!” 그런다.
나는 하던 일을 놓고 일어선다. 안 그래도 내심 가고 싶었다. 가고 싶은 데는 점심도 점심이지만 사람들이 그리워서다. 처형도 보고, 손위 동서도 만나보고, 김장하러 왔다는 동서의 장성한 두 아들과 젊은 두 며느리.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서의 손자. 뭔 일 있을 때마다 만나온 이들이니 식구처럼 보고 싶다.
그이들도 또 그이들이지만 무엇보다 집을 나선다는 것이 좋다. 오래 다녀 친숙한 그 길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발을 끊고 살아 낯설 게 느껴지는 처형 댁으로 가는 길.
밥도 먹고, 사람도 보고, 저들 이야기도 듣고, 웃고, 싱거운 소리도 하고, 생각만 해도 참 좋다. 코로나19 이후로 나는 꼬박 집에 박혀 오직 밥 먹는 일이 내 인생의 국정 목표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 먹고, 점심에 점심밥 먹고, 저녁에 저녁밥 먹고.
처음엔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미안했다. 사람이 하루 종일 밥이나 먹는 소나 돼지 같았다. 책장이나 넘기고 잡지도 보는데, 안다 하는 머릿속은 점점 텅텅 비어가고,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점점 게을러진다. 그게 요즘 삼시세끼 나다.
“밥 먹어! ”아내가 식탁에 밥 차려놓고 부를 때면 나는 내가 밥이나 먹는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려고 일부러 방에 박혀 꾸물댄다. “내 말 안 들려?” 그럴 때까지 일부러 꾸물댄다. 그렇게 꾸물대는 내 속을 아내가 모를 리 없다. 아내는 나직하지만 아주 위엄 있게 “그럼, 도로 집어넣는다!” 그런다. 위협 아닌 위협이다. 식탁 위의 밥을 철수시키겠다는 말이다.
“미안해할 거 없어. 코로나 땜에 세상 모든 남자들이 삼식이가 됐대.”
못 이기는 척 밥 먹는 날 보고 아내가 위로한다.
아내는 또 어디서 들었다며 껌딱지 이야기를 한다.
슈퍼 갈 테니 오늘은 제발 따라오지 말고 집에 혼자 있어요. 그러고 아내가 슈퍼에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더란다. 나 거기 가면 안 될까?
그런 전화 때문에 요즘 아내들 신경질 나 죽겠다는 거다. 슈퍼 갈 때마다 따라가는 날 들으라는 소린지 껌딱지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가슴이 뜨끔하다. 거기다가 나는 겁 없는 삼식세끼다. 삼식이는 아무나 하나. 밥투정을 말아야 하고, 주는 대로 먹고, 맛없어도 맛있게 먹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와, 잘 먹었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설거지에 임해야 한다.
처형 댁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삼식세끼지만 당당해지고 싶다. 내가 존심을 무릅쓰고 밥을 챙겨 먹어 우리나라가 무너지지 않는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