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교수님] ‘판도(Pando)’가 인류의 미래다
[강판권 교수님] ‘판도(Pando)’가 인류의 미래다
by 강판권 교수님 2020.12.21
‘판도(Pando)’는 ‘평등한 관계성’을 의미하는 생태(Eco)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 ‘나는 퍼져나간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판도는 미국 유타 주 피시 호에 사는 미국사시나무의 이름이다. 버드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사시나무 종류인 미국사시나무는 나이가 8만 살이다. 1970년대 처음 판도를 발견한 버튼 반스는 70만 살로 추정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판도의 미국사시나무는 모두 한 그루에서 탄생한 수 그루라는 사실이다. 사시나무는 암수딴그루이고, 열매로 번식하는 유성번식이 아니라 뿌리로 번식하는 무성번식의 나무다. 현재 4만 7천여 그루의 판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숲이다. 그러나 판도도 인간이 이런저런 이유로 개입하면서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내가 판도에 주목하는 것은 코로나19가 결국 생태계 위기에서 발생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은 판도처럼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다. 만약 어느 한 곳이라도 상처를 입거나 떨어져 나가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위기를 맞는다. 지구상의 생명체 하나가 위기를 맞으면 다른 생명체들도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도는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스승이다.
사시나무는 ‘사시나무 떨듯이’라는 속담처럼 잎이 바람에 잘 흔들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사시나무를 백양(白楊)이라 불렀다. 줄기가 희어서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은 사시나무라 부른다. 사시나무를 포함한 버드나무는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생존율이 높다. 중국 한나라 때의 『백호통(白虎通)』에 서민의 무덤에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버드나무를 산소에 심었다. 도잠(陶潛, 365-427년)의 「의만사가(擬挽歌詞)」 중 “거친 풀은 너무도 아득하고, 백양나무 또한 쓸쓸하도다/荒草何茫茫, 白楊亦蕭蕭”라는 시의 내용도 사시나무를 무덤가에 심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도연명으로 유명한 도잠은 자신이 사는 곳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어서 ‘오류(五柳) 선생’이라 불린다.
이런 연유로 백양은 송추(松楸)와 더불어 선산(先山) 혹은 선영(先塋)을 뜻한다. 송추는 묘소에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많이 심어서 유래했다.
판도의 사시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인문적 가치를 갖는 나무다. 그러나 1970년대 집중적으로 심었던 사시나무는 현재 찾아보기조차 쉽지 않다. 경제적 가치가 적다는 이유로 베어버리고 다른 나무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제적 가치만으로 나무의 역사를 무시한 채 차별한다면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은 생태계의 위기다.
세계 곳곳에서 밀림의 나무를 베고 그 대신 경제적 가치가 높다는 나무를 심는 것도 같은 이유로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길 것이다. 인간이 나무의 생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조작한다면 스스로 적응력을 잃어 자생력도 떨어질 것이다. 꽃가루가 싫다고 잘 살고 있는 나무를 베고, 담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수십 년간 인간에게 산소를 공급한 나무를 베어버린다면, 인간의 미래는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판도의 미국사시나무는 모두 한 그루에서 탄생한 수 그루라는 사실이다. 사시나무는 암수딴그루이고, 열매로 번식하는 유성번식이 아니라 뿌리로 번식하는 무성번식의 나무다. 현재 4만 7천여 그루의 판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숲이다. 그러나 판도도 인간이 이런저런 이유로 개입하면서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
내가 판도에 주목하는 것은 코로나19가 결국 생태계 위기에서 발생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은 판도처럼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만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다. 만약 어느 한 곳이라도 상처를 입거나 떨어져 나가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위기를 맞는다. 지구상의 생명체 하나가 위기를 맞으면 다른 생명체들도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도는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스승이다.
사시나무는 ‘사시나무 떨듯이’라는 속담처럼 잎이 바람에 잘 흔들리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사시나무를 백양(白楊)이라 불렀다. 줄기가 희어서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은 사시나무라 부른다. 사시나무를 포함한 버드나무는 생명력이 아주 강해서 생존율이 높다. 중국 한나라 때의 『백호통(白虎通)』에 서민의 무덤에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기록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버드나무를 산소에 심었다. 도잠(陶潛, 365-427년)의 「의만사가(擬挽歌詞)」 중 “거친 풀은 너무도 아득하고, 백양나무 또한 쓸쓸하도다/荒草何茫茫, 白楊亦蕭蕭”라는 시의 내용도 사시나무를 무덤가에 심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도연명으로 유명한 도잠은 자신이 사는 곳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어서 ‘오류(五柳) 선생’이라 불린다.
이런 연유로 백양은 송추(松楸)와 더불어 선산(先山) 혹은 선영(先塋)을 뜻한다. 송추는 묘소에 소나무와 가래나무를 많이 심어서 유래했다.
판도의 사시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도 인문적 가치를 갖는 나무다. 그러나 1970년대 집중적으로 심었던 사시나무는 현재 찾아보기조차 쉽지 않다. 경제적 가치가 적다는 이유로 베어버리고 다른 나무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경제적 가치만으로 나무의 역사를 무시한 채 차별한다면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은 생태계의 위기다.
세계 곳곳에서 밀림의 나무를 베고 그 대신 경제적 가치가 높다는 나무를 심는 것도 같은 이유로 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길 것이다. 인간이 나무의 생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조작한다면 스스로 적응력을 잃어 자생력도 떨어질 것이다. 꽃가루가 싫다고 잘 살고 있는 나무를 베고, 담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수십 년간 인간에게 산소를 공급한 나무를 베어버린다면, 인간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