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빵투아네트’
[이규섭 시인님] ‘빵투아네트’
by 이규섭 시인님 2020.12.28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밖에 나가 길쌈을 메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이 불러 히트한 1953년의 ‘물레방아 도는 내력’의 1절 가사다.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마음을 고향에 기대어 초가집 짓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 담겼다. 당시의 유행가 답지 않게 멜로디가 빠르고 경쾌하다. 두 달 전 졸수(卒壽)로 세상을 뜬 매형이 즐겨 부르던 노래다.
그 시절 초가삼간은 전형적인 농촌의 주거형태다. 필자 또한 초가삼간에서 나고 자랐다. 부엌과 안방, 건너 방이 일자로 나란했다. 사랑채는 별채로 ㄱ자형 구조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 남는다.
남진이 1972년에 불러 히트한 ‘님과 함께’의 주거공간은 서구적이고 이상적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 정든 땅 고향의 초가삼간에서 푸른 초원의 그림 같은 화이트 하우스로 업그레이드됐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새마을운동의 확산으로 초가지붕을 헐고 슬레이트로 교체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지붕만 바뀐 헌 집이 아니라 그림 같은 집에 살고 싶은 대리만족의 꿈이 서렸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주택 선호도가 많이 변했다. 삶의 질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집 가까이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린다. 집 주변에 산책로와 공원이 조성되어 조망까지 갖춘 곳을 원한다. ‘워터프론트’는 라이프스타일의 선망이다. 자연회귀 속성은 ‘물레방아 도는 내력’의 시절과 흡사하다.
아파트가 뭐길래 목숨을 거는가. 아파트에 전세 살던 세입자 부부가 아파트 매입 문제로 다투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집값이 폭등하고 전세 대란에 갈등을 빚는 부동산발 정책 실패가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스물네 차례나 아파트 정책을 내놓았으나 3년 내내 서울 아파트값이 58%나 올랐다고 한다. 가격 격차로 ‘부동산 계급사회’가 됐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2030세대는 부동산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빚을 끌어다 ‘패닉 바잉’에 나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월급으론 집 한 채 못 산다는 생각에 직장인들은 영혼까지 끌어들인 ‘영끌’로 주식투자에 올인하는 실정이다. 주식은 젊은 층에게 구원이라니 뭔가 옆길로 빠진 느낌이다. 자본소득에 대한 박탈감으로 노동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은 후유증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문가의 우려와 겹친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고통을 빵에 비유한 관계 부처 장관은 교체됐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하여 ‘빵투아네트’란 비아냥을 들었다. 프랑스혁명 때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는 비유다. 나태주 시인은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행복이라고 했다. 집이란,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가족들이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며 피로를 눕힐 공간이면 족하지 아니한가.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 박재홍이 불러 히트한 1953년의 ‘물레방아 도는 내력’의 1절 가사다.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마음을 고향에 기대어 초가집 짓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 담겼다. 당시의 유행가 답지 않게 멜로디가 빠르고 경쾌하다. 두 달 전 졸수(卒壽)로 세상을 뜬 매형이 즐겨 부르던 노래다.
그 시절 초가삼간은 전형적인 농촌의 주거형태다. 필자 또한 초가삼간에서 나고 자랐다. 부엌과 안방, 건너 방이 일자로 나란했다. 사랑채는 별채로 ㄱ자형 구조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그림 같은 풍경으로 남는다.
남진이 1972년에 불러 히트한 ‘님과 함께’의 주거공간은 서구적이고 이상적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 정든 땅 고향의 초가삼간에서 푸른 초원의 그림 같은 화이트 하우스로 업그레이드됐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새마을운동의 확산으로 초가지붕을 헐고 슬레이트로 교체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지붕만 바뀐 헌 집이 아니라 그림 같은 집에 살고 싶은 대리만족의 꿈이 서렸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주택 선호도가 많이 변했다. 삶의 질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집 가까이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린다. 집 주변에 산책로와 공원이 조성되어 조망까지 갖춘 곳을 원한다. ‘워터프론트’는 라이프스타일의 선망이다. 자연회귀 속성은 ‘물레방아 도는 내력’의 시절과 흡사하다.
아파트가 뭐길래 목숨을 거는가. 아파트에 전세 살던 세입자 부부가 아파트 매입 문제로 다투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집값이 폭등하고 전세 대란에 갈등을 빚는 부동산발 정책 실패가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스물네 차례나 아파트 정책을 내놓았으나 3년 내내 서울 아파트값이 58%나 올랐다고 한다. 가격 격차로 ‘부동산 계급사회’가 됐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2030세대는 부동산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빚을 끌어다 ‘패닉 바잉’에 나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월급으론 집 한 채 못 산다는 생각에 직장인들은 영혼까지 끌어들인 ‘영끌’로 주식투자에 올인하는 실정이다. 주식은 젊은 층에게 구원이라니 뭔가 옆길로 빠진 느낌이다. 자본소득에 대한 박탈감으로 노동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상황은 후유증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문가의 우려와 겹친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고통을 빵에 비유한 관계 부처 장관은 교체됐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하여 ‘빵투아네트’란 비아냥을 들었다. 프랑스혁명 때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는 비유다. 나태주 시인은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행복이라고 했다. 집이란,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가족들이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며 피로를 눕힐 공간이면 족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