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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아름다운 세월

[한희철 목사님] 아름다운 세월

by 한희철 목사님 2021.03.10

강원도의 한 외진 마을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며 맞은 첫 번째 봄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노란 산수유가 동네 가득 피어난 것도 그랬지만, 그 봄에 들었던 한 소리가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낮고 잔잔한, 그러면서도 당차게 느껴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습니다.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소리의 향방을 가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파도가 일렁이는 소리 같기도 했고, 한 무리의 갈매기 떼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소리를 들으면서도 소리의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어 궁금해하고 있을 때, 때마침 집배원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들렀습니다.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같은 동네 윗마을에 사는 분이기도 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를 물었습니다. 오토바이 시동을 끈 집배원 아저씨가 망설일 것도 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 저 소리요.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의 입 떨어지는 소리예요.”
우연이었을까요, 그날 밤 낮에 있었던 일을 두고 글을 쓰다 달력을 보니 마침 그날이 ‘경칩’(驚蟄), 작은 전율이 마음속으로 지나갔습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첫 입을 떼는 골짜기의 개구리울음소리도 신비했지만, 자신의 때를 어김없이 짐작한 때의 예감이 더 큰 신비로 다가왔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해마다 경칩 때가 되면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며칠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시골에서 살 때는 어김없이 개구리들이 첫 입 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저만 아는 연주회에 초대를 받은 듯 기쁨과 설렘으로 감상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개구리울음소리를 도시에서 듣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시의 삶이란 그렇게 메마른 것이었습니다. 온갖 편리를 누리며 살아가지만, 시간의 흐름과 그 흐름을 따르는 자연의 신비를 느낄 여지가 사라진 곳에서 사는 셈이지요.
지난주 강원도에 있는 발왕산에 다녀왔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여 시승식을 겸하여 떠난 나들이였습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남아 있다면 좋은 경치를 볼 수 있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에 내렸을 때,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별세계였습니다. 얼음꽃이 만개해 있었습니다. 내린 눈이 녹으며 나뭇가지들과 마른 꽃대를 얼음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크리스털이 따로 없었습니다. 봄을 준비하며 막 눈을 뜨던 꽃눈이 얼음 속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가지를 흔들자 얼음과 얼음이 부딪치고, 그러자 사방으로 퍼지는 영롱한 소리, 환상적인 연주가 내내 이어졌습니다. 주어진 때를 따른다면 아름답지 않은 세월 따로 없다고, 지금의 계절을 그렇게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