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나라면 어땠을까
[한희철 목사님] 나라면 어땠을까
by 한희철 목사님 2021.03.18
요즘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는 일이 있습니다. 어딜 가도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LH 한국토지공사 직원들의 부정입니다. LH 한국토지공사는 국가의 토지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공기업입니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 토지공사의 설립 목적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국민 주거생활을 향상시키고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하고자 새로운 토지주택 개발 모델을 구축하여 토지개발, 도시개발, 주택공급 등을 주거복지사업, 공공주택사업, 도시환경 조성사업, 국가정책사업, 연구기술 부문으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다. 주거복지사업 부문에서는 임대주택 공급, 운영관리, 주거지원서비스를 담당하며, 공공주택사업 부문에서는 공공주택의 지속적인 건설과 관련된 사업을 담당한다.”
물론 이번 일로 설립 취지가 다 부정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과는 정반대의 일을 했습니다.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개인의 효율적인 이용’으로 대신했으니 말입니다. 공익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정보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용했으니 설립 취지가 무색해 집니다.
이런 일이 가져오는 가장 나쁜 결과가 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의 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실함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평생을 일해도 내 집 한 채 갖는 일이 어려워진 요즘, 옳지 않은 방법으로 손쉽게 부를 축적하는 것은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만부당한 일입니다.
‘양의 탈을 썼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에는 음흉한 생각을 숨기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서글프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드문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속이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검은 속을 그렇게라도 가려보려는 심산이겠지요. 비단 두루마기를 입었다고 무조건 검은 속을 의심할 건 아니겠으나, 비단 옷 입고 비단 같은 말을 한다고 무조건 믿을 일 또한 아닙니다.
이번 일을 보며 한 가지 반문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고급 정보를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못한 힘과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나를 위해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감히 꿈꾸지 못할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땠을까, 그런 것이 허락되어도 나는 공익을 우선하며 스스로 겸손했을까를 묻게 됩니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십 보 도망가고선 백 보 도망간 이를 탓하는 것은 바른 모습일 수 없습니다. 잘못한 이들이 비난받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반성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국민 주거생활을 향상시키고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하고자 새로운 토지주택 개발 모델을 구축하여 토지개발, 도시개발, 주택공급 등을 주거복지사업, 공공주택사업, 도시환경 조성사업, 국가정책사업, 연구기술 부문으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다. 주거복지사업 부문에서는 임대주택 공급, 운영관리, 주거지원서비스를 담당하며, 공공주택사업 부문에서는 공공주택의 지속적인 건설과 관련된 사업을 담당한다.”
물론 이번 일로 설립 취지가 다 부정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과는 정반대의 일을 했습니다.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개인의 효율적인 이용’으로 대신했으니 말입니다. 공익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정보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용했으니 설립 취지가 무색해 집니다.
이런 일이 가져오는 가장 나쁜 결과가 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그들의 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실함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평생을 일해도 내 집 한 채 갖는 일이 어려워진 요즘, 옳지 않은 방법으로 손쉽게 부를 축적하는 것은 삶의 가치를 부정하는 만부당한 일입니다.
‘양의 탈을 썼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은 그럴듯하지만 속에는 음흉한 생각을 숨기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서글프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드문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속이 검은 사람일수록 비단 두루마기를 입는다고 합니다. 자신의 검은 속을 그렇게라도 가려보려는 심산이겠지요. 비단 두루마기를 입었다고 무조건 검은 속을 의심할 건 아니겠으나, 비단 옷 입고 비단 같은 말을 한다고 무조건 믿을 일 또한 아닙니다.
이번 일을 보며 한 가지 반문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고급 정보를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못한 힘과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나를 위해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감히 꿈꾸지 못할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랬다면 나는 어땠을까, 그런 것이 허락되어도 나는 공익을 우선하며 스스로 겸손했을까를 묻게 됩니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십 보 도망가고선 백 보 도망간 이를 탓하는 것은 바른 모습일 수 없습니다. 잘못한 이들이 비난받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반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