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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세상의 해독제는?

[이규섭 시인님] 세상의 해독제는?

by 이규섭 시인님 2021.03.26

영화 ‘미나리(Minari)’가 미국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뉴스를 접한 뒤 극장을 찾았다. ‘미나리’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시상식은 4월 25일 세계 225개국에 중계된다. 개봉 20일 만에 관객 71만 명을 훌쩍 넘겨 모처럼 극장가에 상큼한 ‘미나리’향기가 퍼진다.
이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 감독(한국명 정이삭)이 쓰고 연출하고, 미국 영화사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하지만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여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된다. 한국어가 80%로 지난 2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이유다. 이 밖에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전미비평가위원회에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80개가 넘는 트로피를 휩쓸 만큼 호평을 받았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농장을 개척하는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그렸다. 미국의 남부 아칸소를 배경으로 한 풍광이 아름답고 끈끈한 가족애가 도드라진다.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으나 한국에서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과 미나리 씨를 가지고 온 할머니 순자(윤여정 분)가 등장하면서 풋풋한 생기가 돈다. 손자와 함께 습지 한 켠 씨를 뿌린 미나리가 초록 물결을 이뤘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말한다.
“데이빗 아, 미나리는 잡초처럼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미나리를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아이고, 바람 분다. 미나리가 고맙습니다. 땡큐 베리 머치, 절하네.”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으로 정착하려는 상징이다.
반전은 할머니의 실수로 농장 창고에 화재가 난다. 망연자실 혼이 나간 듯한 윤여정의 연기가 압권이다.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어 떠나가는 할머니를 가지 말라며 달려가 붙잡는 손자들의 모습은 뭉클한 감동이다. 바닥에 누워서 자는 4명의 가족과 그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가족이란 의미를 품고.
어렸을 적 고향 옹달샘 앞 무논은 ‘미나리꽝’이었다. 샘물과 빗물이 흘러든 진흙탕 논이다. 돌보지 않아도 봄이면 초록 자수를 놓는다. 미나리는 여러해살이 식물로 전국 어디서나 습지와 냇가에 흔하게 자란다.
미나리는 독특한 맛과 향기로 입맛을 돋워준다. 미나리 무침은 아삭아삭 상큼하다. 살짝 데친 뒤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도 일품이다. 미나리 전(煎)도 향미가 듬뿍 배여 혀끝을 감친다. 술 마신 다음 날 복탕의 미나리는 쓰린 속을 쓰러내려 준다. 요즘은 봄철이 아니라도 사시사철 쉽게 먹을 수 있다.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주고 피를 맑게 해주며 황달이나 부인병에 효과적이라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은 적고 있다. 현대의학도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식물로 혈액을 맑게 해주며 해독작용을 해준다는 점은 같다. 미나리의 다양한 효험처럼 이 세상의 독성은 무엇으로 해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