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봄날의 삼 년 고개
[권영상 작가님] 봄날의 삼 년 고개
by 권영상 작가님 2021.04.22
“우리 봄쑥 캐러 가요!”
아내가 그 말을 꺼냈다. 이때가 올 줄 나는 알았다. 그러니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나는 봄쑥이라는 말에 들판으로 나갈 옷을 든든히 껴입었다. 모자에, 마스크에, 목도리에, 장갑을 끼고 독립운동에 나서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길을 나섰다.
시골 봄쑥은 위험하다. 농약 때문이다. 농약 세례를 받지 않은 곳이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쑥보다는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으며 봄 구경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맞닥뜨린 곳이 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비탈이다. 아래쪽은 피복을 씌운 양파 밭이고, 20미터쯤 위쪽은 산으로 빙 돌아 올라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그 산비탈을 향해 다가갔다. 먼 데서 보기에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쑥이 있다면 충분히 있을만한 마른 풀밭이었다. 기어오르 듯 산비탈을 올랐다. 역시 짐작한 대로 마른 풀 사이로 살찐 쑥이 뽀얗게 숨어 있었다.
“와, 쑥밭이네! 말 그대로 쑥밭!”
아내가 즐거워 비명을 질렀다.
산비탈 중턱쯤에 올라가 어깨에 멘 가방을 풀어놓고 쑥을 캤다. 쑥은 통통하고 살이 오르고 무엇보다 깨끗했다. 그러나 성가신 게 있다. 가파른 비탈면이다. 아무리 비탈이어도 쑥을 캐려면 쪼그려 앉아야 하는데 그게 불편했다. 자칫하다가는 뒤로 벌러덩 나뒹굴기 십상이었다. 미처 조심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기 전이었다. 쪼그려 앉은 채 이동하다가 기어이 칡덩굴에 발이 걸려 굴렀다. 나는 기울어진 식탁 위의 실뭉치처럼 데굴데굴 굴러내렸다.
“삼 년이요!”
경황없는 순간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구르면서도 웃었다. 어느쯤에서 마른 풀을 그러잡고 간신히 멈추었다. 혼비백산한 나를 보며 아내는 손뼉을 쳤다. 나는 다시 기어올라가 털썩 주저앉다가 또 굴렀다.
“또 삼 년이요!”
이번에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래쪽까지 굴러간 나는 이 인적 없는 곳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를 찾았다. 산길을 가던 늙수그레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그를 향해 올라갔다. 우리는 쑥을 캐던 곳에서 만났다.
“하늘에서 받아오신 나이에 육 년을 더 사시겠오!”
산으로 두릅을 따러 간다는 그분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산비탈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그 삼 년 고개라는 거다. 저기 산 너머 칠장사를 거쳐 한양으로 가던 암행어사 박문수가 여기서 세 번을 굴렀단다. 그래서 그이가 제 명에서 구 년을 더 살았다는 거다. 사내는 농을 하고는 배낭에 딴 두릅 한 줌을 꺼내주고 갔다.
“당신도 한 번 더 굴러요. 아주 구 년으로.”
그 말에 우리는 웃으며, 쑥을 캐며 하다가 해가 오후 쪽으로 기울자 집으로 돌아왔다.
“이 봄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구르러 가요.”
아내가 저녁에 쑥국을 내오며 그 농담 같은 농담을 또 했다.
다음 날, 다시 그 ‘삼 년 고개’를 찾아가 쑥 한 바구니를 더 캤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정말 이 고개를 지나갔을까. 어리석게도 그 농담을 믿으려는 나를 본다.
아내가 그 말을 꺼냈다. 이때가 올 줄 나는 알았다. 그러니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나는 봄쑥이라는 말에 들판으로 나갈 옷을 든든히 껴입었다. 모자에, 마스크에, 목도리에, 장갑을 끼고 독립운동에 나서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길을 나섰다.
시골 봄쑥은 위험하다. 농약 때문이다. 농약 세례를 받지 않은 곳이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쑥보다는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으며 봄 구경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맞닥뜨린 곳이 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산비탈이다. 아래쪽은 피복을 씌운 양파 밭이고, 20미터쯤 위쪽은 산으로 빙 돌아 올라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그 산비탈을 향해 다가갔다. 먼 데서 보기에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쑥이 있다면 충분히 있을만한 마른 풀밭이었다. 기어오르 듯 산비탈을 올랐다. 역시 짐작한 대로 마른 풀 사이로 살찐 쑥이 뽀얗게 숨어 있었다.
“와, 쑥밭이네! 말 그대로 쑥밭!”
아내가 즐거워 비명을 질렀다.
산비탈 중턱쯤에 올라가 어깨에 멘 가방을 풀어놓고 쑥을 캤다. 쑥은 통통하고 살이 오르고 무엇보다 깨끗했다. 그러나 성가신 게 있다. 가파른 비탈면이다. 아무리 비탈이어도 쑥을 캐려면 쪼그려 앉아야 하는데 그게 불편했다. 자칫하다가는 뒤로 벌러덩 나뒹굴기 십상이었다. 미처 조심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기 전이었다. 쪼그려 앉은 채 이동하다가 기어이 칡덩굴에 발이 걸려 굴렀다. 나는 기울어진 식탁 위의 실뭉치처럼 데굴데굴 굴러내렸다.
“삼 년이요!”
경황없는 순간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구르면서도 웃었다. 어느쯤에서 마른 풀을 그러잡고 간신히 멈추었다. 혼비백산한 나를 보며 아내는 손뼉을 쳤다. 나는 다시 기어올라가 털썩 주저앉다가 또 굴렀다.
“또 삼 년이요!”
이번에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래쪽까지 굴러간 나는 이 인적 없는 곳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를 찾았다. 산길을 가던 늙수그레한 남자가 우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그를 향해 올라갔다. 우리는 쑥을 캐던 곳에서 만났다.
“하늘에서 받아오신 나이에 육 년을 더 사시겠오!”
산으로 두릅을 따러 간다는 그분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산비탈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그 삼 년 고개라는 거다. 저기 산 너머 칠장사를 거쳐 한양으로 가던 암행어사 박문수가 여기서 세 번을 굴렀단다. 그래서 그이가 제 명에서 구 년을 더 살았다는 거다. 사내는 농을 하고는 배낭에 딴 두릅 한 줌을 꺼내주고 갔다.
“당신도 한 번 더 굴러요. 아주 구 년으로.”
그 말에 우리는 웃으며, 쑥을 캐며 하다가 해가 오후 쪽으로 기울자 집으로 돌아왔다.
“이 봄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구르러 가요.”
아내가 저녁에 쑥국을 내오며 그 농담 같은 농담을 또 했다.
다음 날, 다시 그 ‘삼 년 고개’를 찾아가 쑥 한 바구니를 더 캤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정말 이 고개를 지나갔을까. 어리석게도 그 농담을 믿으려는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