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시창(詩窓)에 비친 절망과 희망
[이규섭 시인님] 시창(詩窓)에 비친 절망과 희망
by 이규섭 시인님 2021.04.23
“경성기사를 줄이고 연성기사를 늘리겠다”
퇴직 언론인 단체에서 발행하는 협회보(타블로이드 24면/ 회원ㆍ정부 각 기관 무료 배포) 편집장을 맡게 되면서 밝힌 제작 방향이다. 지난 1년간은 사무총장으로 살림살이를 맡았다. 숫자와 씨름하다 활자를 다루는 회보 제작을 맡게 됐으니 본연의 역할을 되찾은 셈이다.
회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 보니 회보의 논조도 보수적 시각이 많았다. 신문사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딱딱한 기사를 경성기사로 분류한다. 문화, 생활, 스포츠, 연예 등 말랑말랑한 내용의 기사를 연성기사라고 한다. 시사비평을 줄이고 회원들의 참여폭을 늘린 읽을거리를 가미한 새로운 기획을 선보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시창(詩窓)에 비친 세상’이다. 애송시 한 편을 소개하고 시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세상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취지다. 회원들 가운데는 시인, 작가, 수필가, 칼럼니스트들이 많다. 첫 테이프를 끊은 필자는 회원이자 사회학자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다. 박재삼 시인의 ‘소곡(小曲)’에 담긴 이미지를 절망적 현실에 빗대어 날카롭고 격조 높게 비판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돌담 사이 풀잎모양/할 수 없이 솟아서는/남의 손에 뽑힐 듯이 뽑힐 듯이/나는 살까나’ 도대체 이런 자기 학대(虐待)며 자기 부정(否定)이 어디 있는가. 지금 우리가 그런 학대며 부정의 시대에 사는가. 뒷골목 돌담 사이 난 풀잎은 누가 언제든 지나며 생각 없이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그 순간 생명은 끝나는 것이다. 나는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만사휴의(萬事休矣)다. 만사여의(萬事如意)해도 신통치 않을 판에 만사가 그로써 끝난다니, 그것이 어찌 이 시대에 당(當) 할 소리인가’라며 통탄한다.
그는 청년 넷 중 한 명은 일자리 밖으로 방치된 상태를 가슴 아파한다. 그 이유는 천하대본(天下大本)이 너무나도 무섭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통사회 천하대본은 농업(農業)이고, 현대사회 천하대본은 기업(企業)인데, 기업이 흥하지 못하면 지금 우리처럼 청년층이 먼저 죽어난다고 꼬집는다.
두 번째 필자는 SBS 보도제작국장을 지낸 유자효 시인이다. 그는 60 고개를 넘어 퇴직하면서 바라본 70은 인생을 다 산 듯한 나이였다. 막상 70 고개를 넘기자 감히 노인 행세도 할 수 없다. 80이 넘은 선배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니 이제부터 새 일을 시작해도 될 나이라고 다짐한다.
‘노년’을 소재로 한 시들 가운데 그는 구상의 ‘노경(老境)’이 단연 압권이라고 소개한다. 노년은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며, ‘신령한 새싹을 가꾸는 새 밭’이라고 규정한다. ‘육신의 노쇠와 기력의 부족을/ 도리어 정신의 기폭제로 삼아/ 삶의 진정한 쇄신에 나아가자’는 선언에는 노년의 삶의 지향점이 제시된다. 그렇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 피안에다 피울/ 찬란하고도 불멸하는 꿈을 껴안고/ 백금같이 빛나는 노년을 살’아야 하는 희망을 본다. 녹두 빛 잎들이 초록으로 짙어가듯 봄이 깊어간다. 우리 모두 절망을 딛고 푸른 피 흐르는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다.
퇴직 언론인 단체에서 발행하는 협회보(타블로이드 24면/ 회원ㆍ정부 각 기관 무료 배포) 편집장을 맡게 되면서 밝힌 제작 방향이다. 지난 1년간은 사무총장으로 살림살이를 맡았다. 숫자와 씨름하다 활자를 다루는 회보 제작을 맡게 됐으니 본연의 역할을 되찾은 셈이다.
회원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 보니 회보의 논조도 보수적 시각이 많았다. 신문사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딱딱한 기사를 경성기사로 분류한다. 문화, 생활, 스포츠, 연예 등 말랑말랑한 내용의 기사를 연성기사라고 한다. 시사비평을 줄이고 회원들의 참여폭을 늘린 읽을거리를 가미한 새로운 기획을 선보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시창(詩窓)에 비친 세상’이다. 애송시 한 편을 소개하고 시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세상 이야기를 풀어보자는 취지다. 회원들 가운데는 시인, 작가, 수필가, 칼럼니스트들이 많다. 첫 테이프를 끊은 필자는 회원이자 사회학자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다. 박재삼 시인의 ‘소곡(小曲)’에 담긴 이미지를 절망적 현실에 빗대어 날카롭고 격조 높게 비판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돌담 사이 풀잎모양/할 수 없이 솟아서는/남의 손에 뽑힐 듯이 뽑힐 듯이/나는 살까나’ 도대체 이런 자기 학대(虐待)며 자기 부정(否定)이 어디 있는가. 지금 우리가 그런 학대며 부정의 시대에 사는가. 뒷골목 돌담 사이 난 풀잎은 누가 언제든 지나며 생각 없이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그 순간 생명은 끝나는 것이다. 나는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만사휴의(萬事休矣)다. 만사여의(萬事如意)해도 신통치 않을 판에 만사가 그로써 끝난다니, 그것이 어찌 이 시대에 당(當) 할 소리인가’라며 통탄한다.
그는 청년 넷 중 한 명은 일자리 밖으로 방치된 상태를 가슴 아파한다. 그 이유는 천하대본(天下大本)이 너무나도 무섭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통사회 천하대본은 농업(農業)이고, 현대사회 천하대본은 기업(企業)인데, 기업이 흥하지 못하면 지금 우리처럼 청년층이 먼저 죽어난다고 꼬집는다.
두 번째 필자는 SBS 보도제작국장을 지낸 유자효 시인이다. 그는 60 고개를 넘어 퇴직하면서 바라본 70은 인생을 다 산 듯한 나이였다. 막상 70 고개를 넘기자 감히 노인 행세도 할 수 없다. 80이 넘은 선배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니 이제부터 새 일을 시작해도 될 나이라고 다짐한다.
‘노년’을 소재로 한 시들 가운데 그는 구상의 ‘노경(老境)’이 단연 압권이라고 소개한다. 노년은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니’며, ‘신령한 새싹을 가꾸는 새 밭’이라고 규정한다. ‘육신의 노쇠와 기력의 부족을/ 도리어 정신의 기폭제로 삼아/ 삶의 진정한 쇄신에 나아가자’는 선언에는 노년의 삶의 지향점이 제시된다. 그렇다, 우리는 ‘죽음을 넘어 피안에다 피울/ 찬란하고도 불멸하는 꿈을 껴안고/ 백금같이 빛나는 노년을 살’아야 하는 희망을 본다. 녹두 빛 잎들이 초록으로 짙어가듯 봄이 깊어간다. 우리 모두 절망을 딛고 푸른 피 흐르는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