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 교수님] 까치: 집 잃은 자의 설움
[강판권 교수님] 까치: 집 잃은 자의 설움
by 강판권 교수님 2021.04.26
땅은 건물을 짓거나 농사를 짓는 곳이다. 땅이 부족하면 땅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인구 밀도가 아주 높은 국가다. 특히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는 땅값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 그래서 정부는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농경지를 주택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투기꾼들은 정부의 이런 정책을 노리고 농경지를 미리 매입해서 ‘일확천금’을 노린다. 그러나 농경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구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농경지를 아무나 소유하면 농업에 필요한 경작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일정한 경작지를 유지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필요한 양식을 확보할 수 없다. 게다가 국가가 안정적으로 양식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가를 경영할 수 없다.
“농경지 소유는 경작자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을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에 넣은 것도 농경지가 국가의 존립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을 공황(恐惶)에 몰아넣고 있는 국가의 토지를 관리하는 공무원의 토지 투기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다. 왜냐하면 헌법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공무원이 스스로 헌법을 유린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뿌리가 흔들리면 어떤 국가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투기로 무주택자는 망연자실한 상태다.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주택자의 설움은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도 겪는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텃새인 까치도 요즘 무주택자의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까치는 텃새이기 때문에 주로 사람이 사는 주택 주변의 가로수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엉망진창의 가로수 정책 때문에 까치는 수시로 집을 잃고 이사하는 신세다.
현재 우리나라는 봄마다 가로수의 가지를 자른다, 가지가 전깃줄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주변의 양버즘나무 가로수의 가지는 아예 가지를 모두 잘라서 줄기만 남아 있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까치의 집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을 잃은 까치들은 기찻길 선로나 전신주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두 곳은 위험천만의 장소다. 그래서 까치들은 전기에 감전되어 죽기도 하고, 금세 다시 둥지를 짓다가 다시 다른 곳을 전전해야만 한다. 인간은 까치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의 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만행이자 살인행위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집마저도 만행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이 까치집을 생각할 리 없지만, 이런 만행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인간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집은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족하다. 그러나 일부가 공간을 독점하면 반드시 집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특히 정책을 결정하는 자들이 집을 독점하면 그들이 어떤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다.
투기꾼들은 정부의 이런 정책을 노리고 농경지를 미리 매입해서 ‘일확천금’을 노린다. 그러나 농경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구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농경지를 아무나 소유하면 농업에 필요한 경작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일정한 경작지를 유지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필요한 양식을 확보할 수 없다. 게다가 국가가 안정적으로 양식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가를 경영할 수 없다.
“농경지 소유는 경작자만이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기전(耕者有其田)’”을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에 넣은 것도 농경지가 국가의 존립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을 공황(恐惶)에 몰아넣고 있는 국가의 토지를 관리하는 공무원의 토지 투기는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다. 왜냐하면 헌법의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공무원이 스스로 헌법을 유린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뿌리가 흔들리면 어떤 국가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투기로 무주택자는 망연자실한 상태다.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무주택자의 설움은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도 겪는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텃새인 까치도 요즘 무주택자의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 까치는 텃새이기 때문에 주로 사람이 사는 주택 주변의 가로수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엉망진창의 가로수 정책 때문에 까치는 수시로 집을 잃고 이사하는 신세다.
현재 우리나라는 봄마다 가로수의 가지를 자른다, 가지가 전깃줄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주변의 양버즘나무 가로수의 가지는 아예 가지를 모두 잘라서 줄기만 남아 있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까치의 집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을 잃은 까치들은 기찻길 선로나 전신주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두 곳은 위험천만의 장소다. 그래서 까치들은 전기에 감전되어 죽기도 하고, 금세 다시 둥지를 짓다가 다시 다른 곳을 전전해야만 한다. 인간은 까치를 비롯한 다른 생명체들의 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만행이자 살인행위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집마저도 만행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이 까치집을 생각할 리 없지만, 이런 만행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인간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집은 모든 생명체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으로 족하다. 그러나 일부가 공간을 독점하면 반드시 집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특히 정책을 결정하는 자들이 집을 독점하면 그들이 어떤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