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개쪽 줍니다
[권영상 작가님] 개쪽 줍니다
by 권영상 작가님 2021.04.29
아내가 옷장에서 옷을 꺼내 봄옷 정리를 한다. 언뜻 내 눈에 띄는 바지가 있다. 오래전, 직장에 다닐 때 즐겨 입던 베이지색 면바지다. 그걸 집어 들고 나와 예전에 했듯이 다리미로 바지를 다렸다. 바지통이 넓긴 해도 옛 옷의 정취가 있다. 다린 바지를 입고 놀이터 쌈지 도서관을 찾았다.
휴일 오후라 아이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림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틱 낫한 스님의 ‘내 마음의 샘물’이다. 봄볕에 책을 펴고 한 장 한 장 읽어가고 있을 때다.
“아저씨, 축구선수 한 명 모자라 그러는데…….”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내 앞에 와 섰다.
“다섯 명이 하는 축구라 꿀잼 있어요.”
함께 온 노란 바지 사내아이가 꿀잼이라는 말로 나를 유혹한다. 나는 제 자리에 책을 꽂아놓고 달려 나가 노란 바지 편이 되어주었다. 어리다고 만만히 볼 축구가 아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꿀잼 있게 뛰고 달리는 데 나는 애들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숨찼다. 우리 팀이 자꾸 지자, 나에 대한 실망이 커 보였다. 나는 자진해 쫓겨나듯 밀려나왔다. 나와서도 그들을 한참이나 응원하다 슬그머니 동네길로 들어섰다.
그 나이 때엔 축구도 꿀잼일 테고, 물구나무서기도 꿀잼일 테다.
길모퉁이 끝에 편의점이 있다. 콜라 한 캔을 샀다. 그걸 마시며 편의점을 나와 막 돌아설 때다. 편의점 벽에 큼직한 종이 한 장이 붙어있다.
“여기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꼬리 잡히면 개쪽 줍니다. 점주.”
누군가의 무단히 버리는 쓰레기가 편의점 주인을 성가시게 하는 모양이다. 내용이 그러한데도 나는 싱긋이 웃었다. ‘개쪽 줍니다’는 말이 재미있어서다. ‘개쪽 준다’는 엄청 쪽팔리게 해주겠다는 조어다. ‘쪽팔린다’는 비속하게 느껴지지만 ‘개쪽 준다’는 왠지 이 말을 부리는 주인의 격한 감정이 많이 누그러진, 좀 얌전한, 그런대로 교양 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속한 조어인데도 나름대로 편의점 주인의 인성이랄까 그런 게 묻어난다.
언젠가 동네 꽃 가게에 부랴부랴 딸아이의 생일 꽃을 사러 갔을 때다. 하필 가게 문이 잠겨있었다. 힘없이 돌아서는 내 눈에 문에 붙은 메모지가 보였다.
“지금은 신혼여행 중입니다.”
그때 나는 꽃을 사지 못했지만 그 글에 반해 웃음 지으며 돌아왔다. 지금 신혼여행 중에 있을 꽃집 아가씨를 떠올리자, 덩달아 나도 행복해졌다.
직장 근처에 있는, 어느 골목길에서 만난 낙서도 한동안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때 나는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한길이 내다보이는 막다른 담장 벽에서 이런 낙서를 보았다.
“너를 생각하며 돌아선다. 가현2”
학생이 한 낙서 같았다.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가 더는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서는 ‘가현2’는 누구일까. 막다른 담벼락에 조용히 글을 남기고 돌아갔을 그의 마음이 찡하게 느껴졌다. 비록 그게 낙서이긴 해도 그 글을 읽는 순간 갑자기 골목길을 걸어가는 그 동네 젊은 학생 애들이 멋있어 보였다.
으름장을 놓는 경고문이든,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든, 실연의 낙서든 거기엔 분명히 그 글을 쓴 사람의 성품이 나타난다. 좋은 글이란 따스한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휴일 오후라 아이들이 많이 나왔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림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틱 낫한 스님의 ‘내 마음의 샘물’이다. 봄볕에 책을 펴고 한 장 한 장 읽어가고 있을 때다.
“아저씨, 축구선수 한 명 모자라 그러는데…….”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내 앞에 와 섰다.
“다섯 명이 하는 축구라 꿀잼 있어요.”
함께 온 노란 바지 사내아이가 꿀잼이라는 말로 나를 유혹한다. 나는 제 자리에 책을 꽂아놓고 달려 나가 노란 바지 편이 되어주었다. 어리다고 만만히 볼 축구가 아니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꿀잼 있게 뛰고 달리는 데 나는 애들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숨찼다. 우리 팀이 자꾸 지자, 나에 대한 실망이 커 보였다. 나는 자진해 쫓겨나듯 밀려나왔다. 나와서도 그들을 한참이나 응원하다 슬그머니 동네길로 들어섰다.
그 나이 때엔 축구도 꿀잼일 테고, 물구나무서기도 꿀잼일 테다.
길모퉁이 끝에 편의점이 있다. 콜라 한 캔을 샀다. 그걸 마시며 편의점을 나와 막 돌아설 때다. 편의점 벽에 큼직한 종이 한 장이 붙어있다.
“여기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꼬리 잡히면 개쪽 줍니다. 점주.”
누군가의 무단히 버리는 쓰레기가 편의점 주인을 성가시게 하는 모양이다. 내용이 그러한데도 나는 싱긋이 웃었다. ‘개쪽 줍니다’는 말이 재미있어서다. ‘개쪽 준다’는 엄청 쪽팔리게 해주겠다는 조어다. ‘쪽팔린다’는 비속하게 느껴지지만 ‘개쪽 준다’는 왠지 이 말을 부리는 주인의 격한 감정이 많이 누그러진, 좀 얌전한, 그런대로 교양 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속한 조어인데도 나름대로 편의점 주인의 인성이랄까 그런 게 묻어난다.
언젠가 동네 꽃 가게에 부랴부랴 딸아이의 생일 꽃을 사러 갔을 때다. 하필 가게 문이 잠겨있었다. 힘없이 돌아서는 내 눈에 문에 붙은 메모지가 보였다.
“지금은 신혼여행 중입니다.”
그때 나는 꽃을 사지 못했지만 그 글에 반해 웃음 지으며 돌아왔다. 지금 신혼여행 중에 있을 꽃집 아가씨를 떠올리자, 덩달아 나도 행복해졌다.
직장 근처에 있는, 어느 골목길에서 만난 낙서도 한동안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때 나는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한길이 내다보이는 막다른 담장 벽에서 이런 낙서를 보았다.
“너를 생각하며 돌아선다. 가현2”
학생이 한 낙서 같았다.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가 더는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서는 ‘가현2’는 누구일까. 막다른 담벼락에 조용히 글을 남기고 돌아갔을 그의 마음이 찡하게 느껴졌다. 비록 그게 낙서이긴 해도 그 글을 읽는 순간 갑자기 골목길을 걸어가는 그 동네 젊은 학생 애들이 멋있어 보였다.
으름장을 놓는 경고문이든,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든, 실연의 낙서든 거기엔 분명히 그 글을 쓴 사람의 성품이 나타난다. 좋은 글이란 따스한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