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책 끝에 쓰여진 어머니의 메모
[권영상 작가님] 책 끝에 쓰여진 어머니의 메모
by 권영상 작가님 2021.05.27
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다. 생각날 때마다 가끔 찾곤 하던 책이다. <중국차 향기 담은 77편의 수필>. 오래전에 참 좋게 읽은 기억이 있다. 수필의 진수를 만난 것 같은, 뭔가 생각이 막힐 때 읽으면 푸르게 마음이 열리는 기쁨. 그 책을 오늘에야 우연히 발견했다.
대부분 19세기 또는 20세기 중반을 살다간 중국 작가들, 그러니까 시인이자 비평가인 주쯔칭, 정치가 호적,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심종문 등. 나는 그분들의 글을 읽으며 동시에 그분들의 삶과 인생과 세상을 건너는 지혜를 부러워했다. 두어 번 읽고 잊어버리기엔 글이 너무나 깊고 아름답다.
77편의 수필들 중에 제일 앞에 놓인 글은 잘 알려진 주쯔칭의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실직한 아버지와 공부를 하던 나는 고향집을 찾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헤어진다. 아버지는 직장을 찾으러 난징으로, 나는 공부를 하러 북경으로 떠날 때다. 아버지는 스무 살이 넘은 나를 혼자 보내기 안타까워 내가 타는 기차 좌석까지 배웅 나온다. 그러고도 또 부족한 게 있는지 아버지는 기차에서 내려 기찻길 건너에 있는 귤 가게를 향해 가신다. 거길 가려면 꽤 높은 승강구 턱을 올라야 하는데 아버지는 무거운 몸으로 턱을 그러잡고 오르다 떨어질 듯 기우뚱, 하신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의 그 뒷모습을 생각하며 가진 게 없어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웅곤진의 ‘길’도 아름다운 글이다. 그는 ‘길은 소리 없는 언어이며, 무형의 문자로 사상과 문화를 소통시키고, 정감과 우의를 이어준다.’고 말하면서 다들 한번 가는 인생이라면 타인이 간 길이 아닌 나의 새로운 길을 가라고 한다. 평온한 길은 평온하게 종점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험난한 길은 때로 찬란한 미래로 통한다며 어떤 길을 선택하든 멈추지 말기를 바란다는 노작가다운 글을 만날 수 있다.
출간된 연도를 보려고 맨 뒷페이지를 열었다.
‘언젠가 읽게 될 나의 딸에게. 1995년 아빠가.’ 거기엔 뜻밖에도 잉크로 쓰인 나의 메모가 있었다. 1995년이면 딸아이 나이 9살이다. 이 책을 읽기엔 너무 어리다. 수필을 읽으려면 적어도 서른이거나 마흔은 되어야 한다. 설령 그 나이를 먹는다고 한들 이 책을 읽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우연히든 아니든 이 책과 마주쳐야 한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만남을 위해 가끔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책 뒤에 메모를 남긴다.
내 방에 있는 책들 중엔 그렇게 먼 훗날의 딸아이를 위해 메모를 남겨둔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대략 10여 권 정도. 로망 롤랑이 쓴 ‘간디 자서전’, 해금되던 해에 출간된 백석과 정지용의 시집들, 폴란드 작가 센케비치의 ‘어느 등대지기의 이야기’, 아이작 싱어의 ‘개라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개’……
책을 읽고, 좋은 책 뒤에 딸아이를 위해 메모를 남기는 버릇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소년 시절, 나는 어머니 장롱에서 ‘박부인전’과 ‘임진록’의 뒷페이지에 남겨둔 어머니의 메모를 만났다. ‘우리 막네이 크면 꼭 읽어보아라.’ 붓으로 적으신 그 메모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먹먹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곤 했다.
책이 몇 권 없던 시절이라 나는 일찍 그 책들을 만났다. 하지만 적잖은 내 책들 중에서 딸아이가 그 몇 권을 만나기는 어렵겠다. 막연하나마 언젠가는 그 책들을 발견하게 되길 바라며, 그 메모만으로도 아버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대부분 19세기 또는 20세기 중반을 살다간 중국 작가들, 그러니까 시인이자 비평가인 주쯔칭, 정치가 호적,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심종문 등. 나는 그분들의 글을 읽으며 동시에 그분들의 삶과 인생과 세상을 건너는 지혜를 부러워했다. 두어 번 읽고 잊어버리기엔 글이 너무나 깊고 아름답다.
77편의 수필들 중에 제일 앞에 놓인 글은 잘 알려진 주쯔칭의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실직한 아버지와 공부를 하던 나는 고향집을 찾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헤어진다. 아버지는 직장을 찾으러 난징으로, 나는 공부를 하러 북경으로 떠날 때다. 아버지는 스무 살이 넘은 나를 혼자 보내기 안타까워 내가 타는 기차 좌석까지 배웅 나온다. 그러고도 또 부족한 게 있는지 아버지는 기차에서 내려 기찻길 건너에 있는 귤 가게를 향해 가신다. 거길 가려면 꽤 높은 승강구 턱을 올라야 하는데 아버지는 무거운 몸으로 턱을 그러잡고 오르다 떨어질 듯 기우뚱, 하신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의 그 뒷모습을 생각하며 가진 게 없어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웅곤진의 ‘길’도 아름다운 글이다. 그는 ‘길은 소리 없는 언어이며, 무형의 문자로 사상과 문화를 소통시키고, 정감과 우의를 이어준다.’고 말하면서 다들 한번 가는 인생이라면 타인이 간 길이 아닌 나의 새로운 길을 가라고 한다. 평온한 길은 평온하게 종점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험난한 길은 때로 찬란한 미래로 통한다며 어떤 길을 선택하든 멈추지 말기를 바란다는 노작가다운 글을 만날 수 있다.
출간된 연도를 보려고 맨 뒷페이지를 열었다.
‘언젠가 읽게 될 나의 딸에게. 1995년 아빠가.’ 거기엔 뜻밖에도 잉크로 쓰인 나의 메모가 있었다. 1995년이면 딸아이 나이 9살이다. 이 책을 읽기엔 너무 어리다. 수필을 읽으려면 적어도 서른이거나 마흔은 되어야 한다. 설령 그 나이를 먹는다고 한들 이 책을 읽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우연히든 아니든 이 책과 마주쳐야 한다. 나는 그 알 수 없는 만남을 위해 가끔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책 뒤에 메모를 남긴다.
내 방에 있는 책들 중엔 그렇게 먼 훗날의 딸아이를 위해 메모를 남겨둔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대략 10여 권 정도. 로망 롤랑이 쓴 ‘간디 자서전’, 해금되던 해에 출간된 백석과 정지용의 시집들, 폴란드 작가 센케비치의 ‘어느 등대지기의 이야기’, 아이작 싱어의 ‘개라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개’……
책을 읽고, 좋은 책 뒤에 딸아이를 위해 메모를 남기는 버릇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소년 시절, 나는 어머니 장롱에서 ‘박부인전’과 ‘임진록’의 뒷페이지에 남겨둔 어머니의 메모를 만났다. ‘우리 막네이 크면 꼭 읽어보아라.’ 붓으로 적으신 그 메모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먹먹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곤 했다.
책이 몇 권 없던 시절이라 나는 일찍 그 책들을 만났다. 하지만 적잖은 내 책들 중에서 딸아이가 그 몇 권을 만나기는 어렵겠다. 막연하나마 언젠가는 그 책들을 발견하게 되길 바라며, 그 메모만으로도 아버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