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고종의 길
[이규섭 시인님] 고종의 길
by 이규섭 시인님 2021.05.28
점심 식사 후 짬이 나면 덕수궁 돌담길과 고종의 길을 산책한다. 가끔 덕수궁도 공짜(경로 우대)로 둘러볼 수 있으니 도심 속에서 누리는 호사다. ‘고종의 길’은 덕수궁 맞은 켠 미 대사관저 높은 담장 끝 지점에 ‘고종의 길’이란 입간판과 함께 작은 출입문이 보인다.
미 대사관저가 있는 왼쪽은 담장을 이중으로 축조해 놓았고, 오른쪽은 덕수궁 선원전(궁궐 안에 있는 왕실의 사당) 터로 공사장 패널로 막아 놓았다. 패널 벽에는 1938년 당시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 사진 등을 전시해 놓았고, 사진 속 사택이 패널 너머로 보인다. 경사로를 지나 담장이 끝나는 지점의 쪽문을 나서면 구 러시아 공관 앞 정동근린공원이다. 공원 한가운데는 서양풍의 팔각정을 세워놓았다.
‘고종의 길’은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고종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했던 피난길로 치욕의 길이다.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복원 사업이 시작돼 2018년 10월에 개방된 총 120m의 길이다. 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 걸리는 그 길을 고종은 궁녀가 타던 가마에 몸을 싣고 도망쳐야 했던 슬픈 역사의 길이다.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서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머물다가 외국공관이 밀집해 있던 정동의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된다. 정동근린공원 언덕에 우뚝 솟은 구 러시아 공사관(사적 제253호)은 구한말에 지어진 공사관 중 가장 큰 규모다. 6ㆍ25전쟁 당시 파괴돼 첨탑과 지하 통로만 남았다. 정동 언덕에 위치한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 러시아 공관 옆 문화체육관은 복싱 등 운동경기와 마당극 등 공연이 펼쳐져 자주 관람했던 추억 서린 곳이다. 문화체육관 터는 고급빌라가 들어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
정동근린공원 한쪽엔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 패널을 세워 놓았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간 구한말 영욕의 이야기를 사진과 곁들여 찬찬히 곱○○○어 보게 꾸며 놓았다. 아관을 떠나는 임금. 고종, 황제의 나라를 선포하다. 근대, 이 길에서 시작되다. 폐하, 어디로 가시나이까. 오얏꽃 여기서 지다 등 열 가지 테마로 정리해 놓았다.
‘땅의 역사’를 쓰고 있는 박종인 기자는 최근 ‘돈덕전 앞 회화나무의 비애’(조선일보 2021년 5월 12일 자) 편에서 ‘한 나라 군주의 도주로를 현창하는 이유도 알 수 없거니와, 고종의 길은 허황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1895년 5월 당시 미국 공사 알렌이 작성한 주변 실측도를 보면 사방으로 담장이 둘러쳐져 있고 영국 공사관과 미국 공사관,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한 출입구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미ㆍ영ㆍ러 3국이 소통하던 길이었다. ‘엄 상궁과 함께 가마에 탄 고종이 경복궁을 출발해 이 꽉 막힌 길의 담장을 넘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진입하기는 불가능했다’는 주장이다.
역사의 길은 덧칠해서도 안 되고, 왜곡해서는 더욱 안 된다. 고종 일행이 경복궁에서 출발하여 러시아 공관까지 간 것은 확실한데 어떤 경로로 어떻게 갔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미 대사관저가 있는 왼쪽은 담장을 이중으로 축조해 놓았고, 오른쪽은 덕수궁 선원전(궁궐 안에 있는 왕실의 사당) 터로 공사장 패널로 막아 놓았다. 패널 벽에는 1938년 당시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 사진 등을 전시해 놓았고, 사진 속 사택이 패널 너머로 보인다. 경사로를 지나 담장이 끝나는 지점의 쪽문을 나서면 구 러시아 공관 앞 정동근린공원이다. 공원 한가운데는 서양풍의 팔각정을 세워놓았다.
‘고종의 길’은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고종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했던 피난길로 치욕의 길이다.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복원 사업이 시작돼 2018년 10월에 개방된 총 120m의 길이다. 천천히 걸어도 10분 정도 걸리는 그 길을 고종은 궁녀가 타던 가마에 몸을 싣고 도망쳐야 했던 슬픈 역사의 길이다.
고종은 러시아 공관에서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머물다가 외국공관이 밀집해 있던 정동의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된다. 정동근린공원 언덕에 우뚝 솟은 구 러시아 공사관(사적 제253호)은 구한말에 지어진 공사관 중 가장 큰 규모다. 6ㆍ25전쟁 당시 파괴돼 첨탑과 지하 통로만 남았다. 정동 언덕에 위치한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 러시아 공관 옆 문화체육관은 복싱 등 운동경기와 마당극 등 공연이 펼쳐져 자주 관람했던 추억 서린 곳이다. 문화체육관 터는 고급빌라가 들어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
정동근린공원 한쪽엔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 패널을 세워 놓았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3년간 구한말 영욕의 이야기를 사진과 곁들여 찬찬히 곱○○○어 보게 꾸며 놓았다. 아관을 떠나는 임금. 고종, 황제의 나라를 선포하다. 근대, 이 길에서 시작되다. 폐하, 어디로 가시나이까. 오얏꽃 여기서 지다 등 열 가지 테마로 정리해 놓았다.
‘땅의 역사’를 쓰고 있는 박종인 기자는 최근 ‘돈덕전 앞 회화나무의 비애’(조선일보 2021년 5월 12일 자) 편에서 ‘한 나라 군주의 도주로를 현창하는 이유도 알 수 없거니와, 고종의 길은 허황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1895년 5월 당시 미국 공사 알렌이 작성한 주변 실측도를 보면 사방으로 담장이 둘러쳐져 있고 영국 공사관과 미국 공사관,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한 출입구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미ㆍ영ㆍ러 3국이 소통하던 길이었다. ‘엄 상궁과 함께 가마에 탄 고종이 경복궁을 출발해 이 꽉 막힌 길의 담장을 넘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진입하기는 불가능했다’는 주장이다.
역사의 길은 덧칠해서도 안 되고, 왜곡해서는 더욱 안 된다. 고종 일행이 경복궁에서 출발하여 러시아 공관까지 간 것은 확실한데 어떤 경로로 어떻게 갔는지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