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대표님] 어른들은 다 이 모양이란다
[김재은 대표님] 어른들은 다 이 모양이란다
by 김재은 대표님 2021.05.31
“나는 이 걸작품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면서 내 그림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른들은 ‘왜 모자가 무섭겠느냐?’라고 대답했다.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를 그린 것이다. 내가 그 보아 구렁이의 속을 그려 보이자, 어른들은 그제야 이해를 했다. 어른들은 항상 설명을 필요로 한다.”
셍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다. 잘 알겠지만 어른들은 자기가 배운 것, 경험한 것, 알고 있는 대로만 세상을 본다. 그러니 어린 왕자가 그린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를 알 도리가 없다.
어른들은 오히려 속이 보이고 안 보이는 보아 구렁이의 그림은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흥미를 가지라고 충고한다. 이러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에서, 아니 맑은 영혼에서 더 멀어진다.
이렇듯 어른들은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애로서 매번 어른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 준다는 것은 귀찮은 노릇이 아닐 수 없다고 어린 왕자는 넋두리를 한다. 아무리 보아 구렁이를 이야기해도 모자라는 생각밖에 못 하는 어른들이 대신 정치나 골프, 부동산 이야기를 꺼내면 사리에 아주 밝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며 무척 흐뭇해한다며 작은 한숨과 함께 먼 곳을 응시한다.
어른들을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운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하여는 결코 묻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친구의 목소리,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 등은 절대로 묻지 않는다.
대신 ‘나이가 몇이니, 형제가 몇이니, 몸무게가 얼마니, 그 애 아버지 수입은 얼마나 되니?’를 망설임 없이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친구를 알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 제라니움이 있고, 지붕 위엔 비둘기가 나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한다면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10만 프랑 짜리 집을 보았다고 말해야, 어른들은 ‘얼마나 훌륭하나!’며 외친다.
어른들은 숫자나 그럴듯한 겉모양으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다. 어른들은 언제나 그 모양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어린 왕자는 이야기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아주 관대해야 한다고. 그게 어린이라고. 아이들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세상의 겉치레나 체면, 그리고 숫자나 돈에 연연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잔머리를 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그대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의 그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그냥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웃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를 떠올리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가져와 현재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의 삶은 행복의 원리와 아주 비슷하다.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에게나 하는 어른들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하고 싶다면 내 삶에 어린 왕자를 데려와야 한다. 아니 먼 옛날의 어린이나 어린 왕자로 돌아가면 된다. 그냥 그대로 느끼고 인정하고 즐기는 것이 바로 어린이의 삶이자 행복한 삶일 테니. 행복 디자이너가 누렇게 빛이 바랜 ‘어린 왕자’를 펼치는 이유이다.
셍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다. 잘 알겠지만 어른들은 자기가 배운 것, 경험한 것, 알고 있는 대로만 세상을 본다. 그러니 어린 왕자가 그린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를 알 도리가 없다.
어른들은 오히려 속이 보이고 안 보이는 보아 구렁이의 그림은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에 흥미를 가지라고 충고한다. 이러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삶에서, 아니 맑은 영혼에서 더 멀어진다.
이렇듯 어른들은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애로서 매번 어른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 준다는 것은 귀찮은 노릇이 아닐 수 없다고 어린 왕자는 넋두리를 한다. 아무리 보아 구렁이를 이야기해도 모자라는 생각밖에 못 하는 어른들이 대신 정치나 골프, 부동산 이야기를 꺼내면 사리에 아주 밝은 사람을 알게 되었다며 무척 흐뭇해한다며 작은 한숨과 함께 먼 곳을 응시한다.
어른들을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운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하여는 결코 묻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친구의 목소리,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 등은 절대로 묻지 않는다.
대신 ‘나이가 몇이니, 형제가 몇이니, 몸무게가 얼마니, 그 애 아버지 수입은 얼마나 되니?’를 망설임 없이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친구를 알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가에 제라니움이 있고, 지붕 위엔 비둘기가 나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한다면 그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10만 프랑 짜리 집을 보았다고 말해야, 어른들은 ‘얼마나 훌륭하나!’며 외친다.
어른들은 숫자나 그럴듯한 겉모양으로 이야기해야 알아듣는다. 어른들은 언제나 그 모양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어린 왕자는 이야기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게 아주 관대해야 한다고. 그게 어린이라고. 아이들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세상의 겉치레나 체면, 그리고 숫자나 돈에 연연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잔머리를 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그대로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의 그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그냥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웃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를 떠올리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가져와 현재를 괴롭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의 삶은 행복의 원리와 아주 비슷하다.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에게나 하는 어른들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하고 싶다면 내 삶에 어린 왕자를 데려와야 한다. 아니 먼 옛날의 어린이나 어린 왕자로 돌아가면 된다. 그냥 그대로 느끼고 인정하고 즐기는 것이 바로 어린이의 삶이자 행복한 삶일 테니. 행복 디자이너가 누렇게 빛이 바랜 ‘어린 왕자’를 펼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