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불편함, 그 뒤에 숨은 행복
[권영상 작가님] 불편함, 그 뒤에 숨은 행복
by 권영상 작가님 2021.06.10
부산 모 문화재단에서 주는 조그마한 상 하나를 받게 되는 기회가 생겼다. 그 시상식엔 가족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기꺼이 가족과 동행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지금 있는 이유가 가족이나 주변의 도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가족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근데 문제는 코로나다. 가족과 함께 장시간 KTX를 이용한다는 것이 조금 머뭇거려졌다. 그게 불편하다면 남는 건 단 하나. 멀고 힘들더라도 손수 차를 몰아가는 길밖에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390킬로미터에 장장 다섯 시간 거리. 고민 끝에 중간 지점에서 하룻밤을 쉬기로 했다.
4년 전쯤인가.
그때는 경상남도 고성으로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우리는 직지사가 가까운 김천 근방에 숙소를 정하고 여유 있게 출발했다. 그러나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예약에 착오가 생겨 빈방이 없었다. 산속이라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 주인도 딱했던지 우리에게 숙소 주변 숲에서 차박을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등불 아래 늠름한 소나무 숲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슴을 열고 있었다.
불편함이 눈에 빤히 보였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 차 안엔 얼마 전 친지의 결혼 예물로 받아둔, 아직 한 번도 풀어보지 않은 새 이불이 있었다. 우린 그걸 믿었다. 그리 춥지 않은 5월 말의 기온과 주인의 온후한 성품. 무엇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차에서 1박을 해 보고 싶었던 기대감이 있었다.
결혼 예물 이불은 크고 따뜻했다. 세 식구가 덮고 자기에 충분했다. 차가 좁아 운신이 힘들기는 했지만 가족과 함께 차박을 한다는 설레임에 그쯤 불편은 불편도 아니었다. 소나무 숲이 내뿜은 신선한 테라핀 향기와 숲 사이로 보이는 푸른 별들, 밤새들의 뒤척임, 으스스하게 울어대는 쏙독새 울음, 바람의 발소리인지 산짐승의 발소리인지 모를 바스락대는 소리. 숲속 나무들과 함께 봄밤을 자고, 그들과 함께 깨어나는 봄 아침 기분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뿌듯했다. 알고 보면 그 모두 차박의 불편함이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이었다.
그 기억이 온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부산행 중간 지점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찍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본 뒤 전과 달리 제대로 예약해둔 풍산 마애리 숙소를 찾아갔다. 낙동강을 끼고도는 깎아지른 듯한 망천 절벽 안에 있는 마을이었다. 숙소 뒤편은 산이고, 앞은 모내기를 막 끝낸 그리 크지 않은 무논들이었다. 땅거미가 지면서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다.
슬며시 술 한 잔이 생각났다. 우리는 보름달빛 가득한 마을로 걸어 내려갔다. 개구리 소리와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가게를 찾았지만 마을의 밤은 고요할 뿐 가게는 없었다.
원하는 것을 대어 주지 못하는 마애리의 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참을만한 행복이었다. 우리를 휩싸는 마애리 봄밤의 그윽한 달빛과 어둠과 물소리와 밤새들 소리……. 그것들은 불편함 뒤에서 살아나오는 뜻밖의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아침엔 제비 울음소리에 행복하게 잠을 깼다.
느직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논길을 달려 부산으로 향했다.
도시는 뭐든 편리한 것 같지만 우리가 편리하다고 느끼며 사는 만큼 잃어버리고 사는 것도 많다. 거대한 도시 부산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벌써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근데 문제는 코로나다. 가족과 함께 장시간 KTX를 이용한다는 것이 조금 머뭇거려졌다. 그게 불편하다면 남는 건 단 하나. 멀고 힘들더라도 손수 차를 몰아가는 길밖에 없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390킬로미터에 장장 다섯 시간 거리. 고민 끝에 중간 지점에서 하룻밤을 쉬기로 했다.
4년 전쯤인가.
그때는 경상남도 고성으로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우리는 직지사가 가까운 김천 근방에 숙소를 정하고 여유 있게 출발했다. 그러나 늦은 밤,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예약에 착오가 생겨 빈방이 없었다. 산속이라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었다. 주인도 딱했던지 우리에게 숙소 주변 숲에서 차박을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등불 아래 늠름한 소나무 숲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슴을 열고 있었다.
불편함이 눈에 빤히 보였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침 차 안엔 얼마 전 친지의 결혼 예물로 받아둔, 아직 한 번도 풀어보지 않은 새 이불이 있었다. 우린 그걸 믿었다. 그리 춥지 않은 5월 말의 기온과 주인의 온후한 성품. 무엇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차에서 1박을 해 보고 싶었던 기대감이 있었다.
결혼 예물 이불은 크고 따뜻했다. 세 식구가 덮고 자기에 충분했다. 차가 좁아 운신이 힘들기는 했지만 가족과 함께 차박을 한다는 설레임에 그쯤 불편은 불편도 아니었다. 소나무 숲이 내뿜은 신선한 테라핀 향기와 숲 사이로 보이는 푸른 별들, 밤새들의 뒤척임, 으스스하게 울어대는 쏙독새 울음, 바람의 발소리인지 산짐승의 발소리인지 모를 바스락대는 소리. 숲속 나무들과 함께 봄밤을 자고, 그들과 함께 깨어나는 봄 아침 기분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뿌듯했다. 알고 보면 그 모두 차박의 불편함이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이었다.
그 기억이 온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우리는 부산행 중간 지점으로 안동 하회마을을 찍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본 뒤 전과 달리 제대로 예약해둔 풍산 마애리 숙소를 찾아갔다. 낙동강을 끼고도는 깎아지른 듯한 망천 절벽 안에 있는 마을이었다. 숙소 뒤편은 산이고, 앞은 모내기를 막 끝낸 그리 크지 않은 무논들이었다. 땅거미가 지면서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다.
슬며시 술 한 잔이 생각났다. 우리는 보름달빛 가득한 마을로 걸어 내려갔다. 개구리 소리와 강물 소리를 들으며 가게를 찾았지만 마을의 밤은 고요할 뿐 가게는 없었다.
원하는 것을 대어 주지 못하는 마애리의 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참을만한 행복이었다. 우리를 휩싸는 마애리 봄밤의 그윽한 달빛과 어둠과 물소리와 밤새들 소리……. 그것들은 불편함 뒤에서 살아나오는 뜻밖의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아침엔 제비 울음소리에 행복하게 잠을 깼다.
느직이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논길을 달려 부산으로 향했다.
도시는 뭐든 편리한 것 같지만 우리가 편리하다고 느끼며 사는 만큼 잃어버리고 사는 것도 많다. 거대한 도시 부산을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벌써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