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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미술관에서 만난 ‘여인’

[이규섭 시인님] 미술관에서 만난 ‘여인’

by 이규섭 시인님 2021.06.11

‘옹기 접시에 그린 여인의 얼굴’을 보려고 ‘환기미술관’에 들렀다. 종로구 자하문로 부암동 주택가 비탈진 골목에 위치하여 찾기가 녹록지 않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김환기의 그랜드 투어 <파리통신>’전이 열리고 있다.
큐레이터의 안내로 본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전시장부터 들렀다. 입구엔 키가 큰 김환기와 키 작은 아내 김향안 시인의 흑백사진이 걸렸다. 키 높이를 맞추려 한 계단 엇갈리게 선 모습이 웃음을 머금게 한다. 김환기는 민족 정서와 철학을 고유의 조형 언어로 승화시킨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다. 1971년에 그린 전면 점화 ‘우주’는 지난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낙찰되어 한국 미술품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번 특별전은 김환기가 서양미술 중심지였던 파리에 머물던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1956∼1957년 경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드로잉 작품 42점은 대부분 첫 공개라고 한다.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 파리 주택가와 센강의 풍경, 프랑스 정물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뤄 눈길을 끈다.
3층 전시실에서 만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작품 앞에 서니 가슴이 먹먹하도록 벅차오른다. 캔버스에 유채. 세로 236㎝, 가로 172㎝의 대작으로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반 추상화에서 화면 전체를 점으로 찍은 추상화로의 변신은 당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김환기가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 때 한국에 있는 그의 친구 김광섭 시인이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저녁에’라는 시에 담아 보냈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김환기는 그 마음을 담아 작품을 그렸다.
점화의 작업 방식은 화면 전체에 점을 찍고 그 점 하나하나를 여러 차례 둘러싸 가는 동안에 색이 중첩되고 번져나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무심코 찍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과 번짐의 차이로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는 평가다. 먹색에 가까운 짙은 푸른빛의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 가운데 나의 별은 어디에 있는지 망연히 바라본다.
‘달관(수향산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림에도 조예가 깊은 김향안 시인이 그린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색조가 밝고 은은하다. 전시관 한쪽에 김환기 유품을 보관해 놓았다. 그곳에 ‘옹기 접시에 그린 여인의 얼굴’이 반긴다. 유리 상자 속에 보물처럼 자리 잡았다. 달덩이처럼 둥근 얼굴 윤곽은 피난시절 부산 바닷가를 배경으로 그린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들과 닮았으나 선이 굵고 세련된 모습이다.
김환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으로 소유자는 미술관에 동행한 언론인이다. 그에게 선물로 준 원소유자는 타계했다. 궁리 끝에 미술관 측에 장기 임대했다. 그는 서류상의 주인이다. 지난해 김환기의 도예작품 전시회에 처음으로 공개돼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