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덕여재에서의 하룻밤
[권영상 작가님] 덕여재에서의 하룻밤
by 권영상 작가님 2021.06.24
안동 하회 마을에서의 하룻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때, 그 마을 덕여재에서 숙박을 했다. 마치 고향 어머니 곁에 와 하룻밤을 잔 것처럼 편안하고 좋았다. 덕여재는 안마당에 안채가 뒤란에 뒷채가 있다.
우리가 그때 찾아갔을 때는 캄캄한 가을밤이었다. 하회 마을 좁디좁은 흙담장 골목길로 차를 몰고 들어가 몇 바퀴나 돌고 돌아 간신히 그 댁을 찾았다. 그 댁 주인은 우리를 위해 대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오래 기다리느라 희미해진 외등 불빛을 밟아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처마에 깎아 매달아놓은 붉은 감 주렴이 불빛에 은은했다. 그제야 인사를 주고받고 보니 덕여재 주인어른이 너무도 점잖고 의젓한 분이었다.
우리는 그분이 내어주시는 밤늦은 차 한 잔을 마시고, 예약해 놓은 뒷채로 안내를 받았다. 뒷채는 앞채보다 터가 높아 방에 앉아 여닫이문을 열면 마치 누각에 오른 듯했다. 16㎡ 남짓한 따뜻한 방, 조선살 무늬 문, 문짝에 박힌 무쇠 문고리. 웃옷을 벗어 거는 횃대와 학과 달과 소나무 수가 놓인 횃댓보.
천장 모퉁이에 걸려있는 커다란 박. 딱지 벽지 벽에 걸린 책거리 민화 한 점. 윗목에 자리 잡고 앉은 반닫이 위에 잘 개어놓은 요와 이불과 베개.
전깃불을 끄고 문을 여니 들어올 때에 보이던 하현달이 안채 지붕 끝에 꽂혀 있었다. 전깃불만 없었다면 우리는 문득 조선시대의 어느 한 고을에 와 있지, 싶은 밤이었다. 캄캄한 밤길을 밟아 여길 찾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득한 시간대의 어느 땅속에서 불쑥 솟아난 듯 하늘에서 떨어진 듯 세상과의 연결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리 오너라! 외치면 문득 ‘쇤네’가 나타날 것 같은 늦은 밤에 인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덕여재 주인장이시다. 내일, 이른 아침부터 지붕을 이을 테니까 좀 소란스러워도 참아달라는 말씀을 전하고 가셨다.
‘참 와도 너무 좋은 날을 골라왔구나’ 했다.
이튿날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눈을 떴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안채 지붕 위에 어른 몇이 올라가 안마당에서 올리는 이엉을 받고 있었다. 그 정경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예전 고향집도 초가였다. 아버지가 큰댁에서 분가해 나오실 때 받은 집이라 했는데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초가였다. 아버지는 해마다 늦가을이면 이엉을 얹으셨다. 그때는 나도 아침부터 아버지를 따라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이엉을 올리느라 짚북데기를 뒤집어쓰곤 했다. 근데 그 일을 멀리 떨어진 하회 마을에 와 다시 만나게 됐다.
이엉을 올리느라 주고받는 이들의 말소리가 낯익었다. 한 세상을 산 이들의 나이가 밴 목소리다. 가만 생각하려니 그게 그 무렵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지붕에 올라선 이들 연세가 그때의 아버지 연세일 것 같았다. 나는 괜히 그분들이 더없이 가까워져 육친의 정 같은 걸 느꼈다. 가만있을 수 없어 안마당으로 나가 이엉 올리는 일을 거들었다. 그때에 이엉에서 풍기던 볏짚 냄새가 내 먼 추억의 촉수를 건들었나 보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났다. 이제는 이쪽 세상에 안 계시는 부모님을 여기 덕여재 초가에서 뵙는 듯 서글펐다.
요 얼마 전, 부산 가는 길에 하회 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온통 시멘트로 만들어진 도시를 벗어나 하룻밤이라도 초가에 머물면 몸은 금방 그 옛날의 시간으로 안락히 돌아간다.
우리는 그때, 그 마을 덕여재에서 숙박을 했다. 마치 고향 어머니 곁에 와 하룻밤을 잔 것처럼 편안하고 좋았다. 덕여재는 안마당에 안채가 뒤란에 뒷채가 있다.
우리가 그때 찾아갔을 때는 캄캄한 가을밤이었다. 하회 마을 좁디좁은 흙담장 골목길로 차를 몰고 들어가 몇 바퀴나 돌고 돌아 간신히 그 댁을 찾았다. 그 댁 주인은 우리를 위해 대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를 오래 기다리느라 희미해진 외등 불빛을 밟아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처마에 깎아 매달아놓은 붉은 감 주렴이 불빛에 은은했다. 그제야 인사를 주고받고 보니 덕여재 주인어른이 너무도 점잖고 의젓한 분이었다.
우리는 그분이 내어주시는 밤늦은 차 한 잔을 마시고, 예약해 놓은 뒷채로 안내를 받았다. 뒷채는 앞채보다 터가 높아 방에 앉아 여닫이문을 열면 마치 누각에 오른 듯했다. 16㎡ 남짓한 따뜻한 방, 조선살 무늬 문, 문짝에 박힌 무쇠 문고리. 웃옷을 벗어 거는 횃대와 학과 달과 소나무 수가 놓인 횃댓보.
천장 모퉁이에 걸려있는 커다란 박. 딱지 벽지 벽에 걸린 책거리 민화 한 점. 윗목에 자리 잡고 앉은 반닫이 위에 잘 개어놓은 요와 이불과 베개.
전깃불을 끄고 문을 여니 들어올 때에 보이던 하현달이 안채 지붕 끝에 꽂혀 있었다. 전깃불만 없었다면 우리는 문득 조선시대의 어느 한 고을에 와 있지, 싶은 밤이었다. 캄캄한 밤길을 밟아 여길 찾아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득한 시간대의 어느 땅속에서 불쑥 솟아난 듯 하늘에서 떨어진 듯 세상과의 연결을 가늠할 수 없었다.
이리 오너라! 외치면 문득 ‘쇤네’가 나타날 것 같은 늦은 밤에 인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덕여재 주인장이시다. 내일, 이른 아침부터 지붕을 이을 테니까 좀 소란스러워도 참아달라는 말씀을 전하고 가셨다.
‘참 와도 너무 좋은 날을 골라왔구나’ 했다.
이튿날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눈을 떴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안채 지붕 위에 어른 몇이 올라가 안마당에서 올리는 이엉을 받고 있었다. 그 정경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예전 고향집도 초가였다. 아버지가 큰댁에서 분가해 나오실 때 받은 집이라 했는데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초가였다. 아버지는 해마다 늦가을이면 이엉을 얹으셨다. 그때는 나도 아침부터 아버지를 따라 지붕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이엉을 올리느라 짚북데기를 뒤집어쓰곤 했다. 근데 그 일을 멀리 떨어진 하회 마을에 와 다시 만나게 됐다.
이엉을 올리느라 주고받는 이들의 말소리가 낯익었다. 한 세상을 산 이들의 나이가 밴 목소리다. 가만 생각하려니 그게 그 무렵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지붕에 올라선 이들 연세가 그때의 아버지 연세일 것 같았다. 나는 괜히 그분들이 더없이 가까워져 육친의 정 같은 걸 느꼈다. 가만있을 수 없어 안마당으로 나가 이엉 올리는 일을 거들었다. 그때에 이엉에서 풍기던 볏짚 냄새가 내 먼 추억의 촉수를 건들었나 보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났다. 이제는 이쪽 세상에 안 계시는 부모님을 여기 덕여재 초가에서 뵙는 듯 서글펐다.
요 얼마 전, 부산 가는 길에 하회 마을에서 하루를 묵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온통 시멘트로 만들어진 도시를 벗어나 하룻밤이라도 초가에 머물면 몸은 금방 그 옛날의 시간으로 안락히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