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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세상은 어찌나 아름답던 지요

[한희철 목사님] 세상은 어찌나 아름답던 지요

by 한희철 목사님 2021.07.21

1995년 12월 8일, 한 사람의 인생에 심각한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며, 뛰어난 필체와 화술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던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것입니다.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던 보비의 당시 나이는 불과 43세였습니다.
잃었던 의식을 3주 만에 되찾았지만 그의 온몸은 전신마비 상태였습니다. ‘갇힘 증후군’이라 옮길 수 있는 ‘Locked-in syndrome’이 찾아와 온몸이 마비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왼쪽 눈뿐이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현실은 끔찍한 것이었지만, 보비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어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왼쪽 눈의 깜박임으로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의 깜박임을 통해 보비는 글을 썼습니다. 15개월간 수없는 깜박임을 통해 쓴 책이 바로 <잠수복과 나비>입니다. 자신의 몸은 잠수복을 입고 깊은 물속에 갇혀 있는 상태와 다를 것이 없지만, 자신의 영혼만큼은 나비처럼 날고 싶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책이 출간된 지 8일 만에 보비는 자신이 꿈꾸었던 나비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보비가 들려주는 다음의 이야기는 원망과 불평으로 허투루 보내기 쉬운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끊임없이 입속에 과다하게 고이다 못해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 같다.”
침을 아무렇지도 않게 삼킬 수 있는 것, 밥을 내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것, 두 눈을 마음껏 깜박일 수 있는 것, 내 생각을 펜으로 쓰거나 자판으로 두드려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아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모든 것들이 실상은 더없이 큰 은총이라는 것을 보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실감을 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비가 예감했던 것일까요, 책에 실린 마지막 글의 제목은 ‘휴가 끝’입니다. 그 글에서 보비는 캥거루의 짧은 노래를 들려줍니다. 《캥거루는 벽을 넘었습니다. 동물원의 벽을. 하나님 맙소사, 벽이 얼마나 높던 지요. 하나님 맙소사, 세상은 어찌나 아름답던 지요.》
오래전 캥거루의 노래를 대하며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현실의 벽이 높을수록 벽을 넘기는 어렵지만, 그 벽을 넘을 수만 있다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울 것입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물론 불어오는 바람과 공기부터 다를 테니까요.
바로 그것이 잠수복과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춤추는 나비가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갑갑한 현실 속에 잠수복을 입은 사람처럼 살지 말고, 나비처럼 현실의 벽을 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던 지요, 캥거루의 노래를 우리도 같이 부를 수 있기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