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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잃어버린 신발, 선물 받은 신발

[한희철 목사님] 잃어버린 신발, 선물 받은 신발

by 한희철 목사님 2021.07.28

지금 목회하고 있는 정릉교회 예배당 앞에는 작은 공터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쓰레기와 잡초로 방치되던 곳을 몇 차례 치워내고 꽃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집터가 무너진 자리여서 돌이 많았고, 땅에 묻혀 있는 쓰레기도 적지가 않았습니다. 조금씩 꽃들이 늘어나자 오가는 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꽃에 물드는 시간이다 싶었습니다.
꽃의 빛깔과 향기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물들인다 싶었지요. 함께 마음을 모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아 <무지개마당>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무지개마당을 찾아왔습니다. 마을 곳곳의 공터에 꽃을 심는 뜻밖의 모임이 있었고, 두 사람은 그 모임에 속한 이들이었습니다. 옷을 땀으로 적시며 두 사람은 저녁 무렵까지 잡초를 뽑고 꽃을 심었습니다.
일을 모두 마친 뒤 신발을 갈아 신으려 할 때였습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장화를 가지고 와 운동화와 바꿔 신고 일을 했는데, 무슨 일인지 길 쪽에 벗어둔 운동화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 운동화가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일할 때 신었던 장화를 신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이가 벗어둔 신발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신발에 손을 대다니, 그냥 지나가기에는 사안이 고약하다 싶었습니다. 생각하다가 <무지개마당> 초입에 글을 써서 붙였습니다. 운동화를 가져가신 분은 알려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곁에 있는 CCTV를 열람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벌은 아니라도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막아야 할 일로 여겨졌습니다.
다음날 누군가가 쪽지 아래에 답장을 써서 붙였는데, 내용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자기가 가져간 것 같은데, 운동화를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그래도 변상은 꼭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연락처를 남겨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약간의 치매 기운이 있는 노인분이었습니다.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 생각했던 답장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운동화를 잃어버린 이도 굳이 처벌이나 보상을 원한 것이 아니어서 그렇게 일단락을 짓기로 했습니다. 노인분께도 걱정하지 말라고, 다만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이어졌습니다. 우연히 이야기를 듣게 된 지인이 운동화를 꼭 사주고 싶어 했습니다. 운동화를 잃어버린 이에게 지인의 뜻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그는 그런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며 사양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운동화를 사주고 싶어 하는 마음 또한 아름다운 마음이니 받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권했고, 마침내 그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함께 나가 운동화를 사는 마음이 여간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가는 훈훈한 일들이 <무지개마당>을 통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꽃송이처럼 피어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