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상 작가님] 옥수수 다섯 통
[권영상 작가님] 옥수수 다섯 통
by 권영상 작가님 2021.07.30
올해도 옥수수 다섯 통이 올 모양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옥수수가 왔다는 안내가 붙었다.
중복에서 말복 사이, 그쯤이면 어김없이 초록 잎에 싸인 싱싱한 옥수수가 왔다. 예쁜 그물망에 옥수수 다섯 통이 든 여름 선물을 받으며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우리 아파트로 들어오는 어귀에 음식점 몇이 있다. 그중엔 오래 묵힌 김치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이 있다. 바쁠 때나, 또는 늦은 시간 멀리서 집으로 돌아올 때 여기저기 마땅한 음식점을 찾다가 끝내는 거기에 들러 먹고는 했다. 주메뉴가 묵은지 김치찌개와 달걀말이, 돼지고기 숯불구이 정도로 소박한 음식들이다.
영업시간이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다. 날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은 한정된 폭을 가지고 있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줄을 설 정도로 넘쳐나다 보니 길은 늘 북적인다. 언젠가 그 길로 차를 몰아들어오다가 그만 접촉사고를 냈다. 그건 차를 피하는 도중에 일어난 나의 미숙한 운전 실력 때문이었다.
그때, 그 사고 현장으로 음식점 주인이 달려 나와 내게 고개를 숙였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시는 카센터에 맡겨주시면 깨끗이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대충은 그분이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음식점 앞길이 번잡했을 뿐 사고는 분명 나의 실수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주인은 몸을 낮추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이웃집 남자도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불편한 일이 있기는 해도 나는 그 음식점을 탓해본 적이 없다.
어디나 음식점들은 쉴 사이 없이 개업과 폐업을 반복한다. 음식점의 80퍼센트가 적자로 허덕이다 2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그들이 실내 탁자 위에 의자를 얹어놓고 문을 열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나의 일 같이 마음이 아프다. 하루 종일 빈 음식점을 지키고 있는 주인들을 볼 때면 그들이 겪고 있을 고충과 절망감이 내게도 전해진다.
세상이 그러한데 비해 묵은지 음식점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건재하다. 이름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쓰러져나가도 그 음식점만은 붐볐다. 그 음식점의 붐빔을 지켜볼 때면 나는 위안을 느낀다. 비록 사람과 차들로 번잡하긴 하지만, 낮이든 밤이든 바람에 실려오는 음식 조리 냄새가 불편하긴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내는 모습이 오히려 대견스럽다. 밤늦도록 음식점 안이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에서 나는 가끔 산다는 것의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꺾이지 않는 그 음식점이 멋있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차량을 주차해 주기 위해 두세 명의 유니폼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이며, 음식점 문을 열고 나오는 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 무엇보다 지난 10년 동안 늘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크고 번듯한 음식점 간판이 나를 든든하게 한다.
특별한 음식도 아닌 평범한 묵은지 메뉴로 10여 년을 지키는 경영 기술은 뭘까.
옥수수가 나는 철이면 그 음식점 젊은 주인은 어김없이 남해안 어느 농부가 키운다는 푸른 옥수수를 보낸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수백 가구에 보내오는 옥수수 다섯 통. 어쩌면 그 변함없는 초심이 그 음식점의 경영 기술이 아닐까 싶다.
집에 들어가 보니 안내문을 읽은 아내가 옥수수 다섯 통을 삶고 있다. 이제 30여 분 뒤면 그 음식점의 경영 기술을 맛볼 수 있겠다. 풋풋한 냄새가 거실에 번진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옥수수가 왔다는 안내가 붙었다.
중복에서 말복 사이, 그쯤이면 어김없이 초록 잎에 싸인 싱싱한 옥수수가 왔다. 예쁜 그물망에 옥수수 다섯 통이 든 여름 선물을 받으며 살아온 지 10년이 넘었다.
우리 아파트로 들어오는 어귀에 음식점 몇이 있다. 그중엔 오래 묵힌 김치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이 있다. 바쁠 때나, 또는 늦은 시간 멀리서 집으로 돌아올 때 여기저기 마땅한 음식점을 찾다가 끝내는 거기에 들러 먹고는 했다. 주메뉴가 묵은지 김치찌개와 달걀말이, 돼지고기 숯불구이 정도로 소박한 음식들이다.
영업시간이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다. 날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아파트로 들어오는 길은 한정된 폭을 가지고 있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줄을 설 정도로 넘쳐나다 보니 길은 늘 북적인다. 언젠가 그 길로 차를 몰아들어오다가 그만 접촉사고를 냈다. 그건 차를 피하는 도중에 일어난 나의 미숙한 운전 실력 때문이었다.
그때, 그 사고 현장으로 음식점 주인이 달려 나와 내게 고개를 숙였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시는 카센터에 맡겨주시면 깨끗이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대충은 그분이 주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음식점 앞길이 번잡했을 뿐 사고는 분명 나의 실수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주인은 몸을 낮추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이웃집 남자도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불편한 일이 있기는 해도 나는 그 음식점을 탓해본 적이 없다.
어디나 음식점들은 쉴 사이 없이 개업과 폐업을 반복한다. 음식점의 80퍼센트가 적자로 허덕이다 2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말은 사실인 듯하다. 그들이 실내 탁자 위에 의자를 얹어놓고 문을 열지 않는 모습을 볼 때면 나의 일 같이 마음이 아프다. 하루 종일 빈 음식점을 지키고 있는 주인들을 볼 때면 그들이 겪고 있을 고충과 절망감이 내게도 전해진다.
세상이 그러한데 비해 묵은지 음식점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건재하다. 이름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쓰러져나가도 그 음식점만은 붐볐다. 그 음식점의 붐빔을 지켜볼 때면 나는 위안을 느낀다. 비록 사람과 차들로 번잡하긴 하지만, 낮이든 밤이든 바람에 실려오는 음식 조리 냄새가 불편하긴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견뎌내는 모습이 오히려 대견스럽다. 밤늦도록 음식점 안이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에서 나는 가끔 산다는 것의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꺾이지 않는 그 음식점이 멋있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차량을 주차해 주기 위해 두세 명의 유니폼을 입은 젊은 청년들이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이며, 음식점 문을 열고 나오는 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 무엇보다 지난 10년 동안 늘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크고 번듯한 음식점 간판이 나를 든든하게 한다.
특별한 음식도 아닌 평범한 묵은지 메뉴로 10여 년을 지키는 경영 기술은 뭘까.
옥수수가 나는 철이면 그 음식점 젊은 주인은 어김없이 남해안 어느 농부가 키운다는 푸른 옥수수를 보낸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수백 가구에 보내오는 옥수수 다섯 통. 어쩌면 그 변함없는 초심이 그 음식점의 경영 기술이 아닐까 싶다.
집에 들어가 보니 안내문을 읽은 아내가 옥수수 다섯 통을 삶고 있다. 이제 30여 분 뒤면 그 음식점의 경영 기술을 맛볼 수 있겠다. 풋풋한 냄새가 거실에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