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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역할: 사라진 꿩의 귀환을 고대하며

[강판권 교수님] 역할: 사라진 꿩의 귀환을 고대하며

by 강판권 교수님 2021.08.09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각각 역할을 갖고 태어난다. 모든 생명체의 존재 가치는 사는 동안 각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때 드러난다.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 세상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만, 반대면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현재 코로나19를 비롯해서 가뭄과 홍수 등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의 원인도 생명체의 역할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꿩이 아주 흔했다. 겨울 방학 때면 찔레 열매에 약을 넣어 산에 뿌려 잡곤 했다. 대도시에서도 오래전에는 집 주변의 낮은 산에서 꿩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간혹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침 일찍 산에 오르면 잠자던 꿩이 놀라 소리 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꿩의 이름은 꿩이 내는 소리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꿩 소리를 들으면 아주 기분이 좋다. 꿩이 짝 짓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날아가는 모습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꿩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꿩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각 도시의 주택과 도로 건설은 텃새인 꿩의 터전을 한순간에 날려 버린다.
꿩이 사라지면 꿩과 공생하던 생명체의 삶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주거지만 생각할 뿐 꿩의 집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꿩을 사육해서 보양식으로 먹는 데만 혈안이다.
꿩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친근하기 때문에 관련 민속도 많이 남아 있다. 꿩을 의미하는 한자는 ‘치(雉)’이고,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꿩을 ‘야계(野鷄)’라 불렀다. 야계는 ‘야생 닭’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만큼 닭처럼 친숙하다는 뜻이다. 강원도 치악산은 꿩의 전설을 품고 있는 대표적인 지명이다.
꿩 중에서도 「장끼전」ㆍ「까투리타령」 등에서 보듯이 수컷은 ‘장끼’, 암컷은 ‘까투리’라 한다. 이처럼 꿩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꿩고기는 조선시대 종묘에 올릴 만큼 귀했다. 그러나 공자는 까투리의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논어(論語)ㆍ향당(鄕黨)』에 따르면, “새가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가 날아올라 빙빙 돈 뒤에 다시 내려앉자”, 공자가 “계곡 다리에 있는 까투리가 제철이구나, 제철이구나”했다.
그러자 공자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인 자로(子路)는 스승의 얘기가 꿩고기를 먹고 싶은 걸로 착각하고 “그 까투리를 잡아 요리해서 바쳤다.” 그러나 공자는 “세 번 냄새를 맡고 일어났다.” 이 구절에서 ‘색거(色擧)'의 단어가 탄생했다. ‘눈치를 살피다가 날아오른다’는 색거는 “사람이 어떤 기미를 보고서 신속하게 행동을 취해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꿩도 곳곳에서 난개발이 진행되자, 결국 죽지 않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인간은 꿩이 떠난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꿩이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 인간의 건강한 삶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꿩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인간도 결국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그루 나무와 한 포기 풀은 꿩의 고향이자 인류의 어머니다. 늦기 전에 인간은 꿩이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때를 놓쳐 꿩이 돌아오지 않으면 인간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