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노인인가? 어른인가?
[이규섭 시인님] 노인인가? 어른인가?
by 이규섭 시인님 2021.08.13
Z세대 선수들의 도쿄올림픽 활약은 신선하고 감동적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큰 경기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승부를 즐긴다. 한국 양궁 최초로 3관왕에 등극한 스무 살 궁사 안산의 활시위는 침착하고 담담하다. “좋아하는 건 즐기며 살자”가 좌우명이라는 그는 “후회 없는 시합을 즐기자”며 스스로를 추스렸다.
정적인 스포츠 양궁 경기장에서 요란스레 “파이팅”을 외치며 활시위를 당긴 2관왕의 김제덕도 “노력하면서 즐겼다”고 밝혀 주눅 들지 않고 승부 자체를 즐겼다.
아시아 수영 역사를 새로 쓴 고교생 수영선수 황선우는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치른 것조차 만족한다”며 긍정 마인드를 드러냈다. 첫 올림픽을 좋은 성적으로 무사히 마쳐 후련하고 행복하다는 말은 달달하다. 유도 남자 100kg급 결승전 연장전에서 패자가 된 29살 조구함 선수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 상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대결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여자 펜싱 ‘에페’ 단체전 금메달을 놓고 에스토니아 선수와 맞붙었던 93년생 송세라 선수는 중심을 잃은 상대를 배려하여 경기를 멈춘 것도 아름답다. 앞 세대 선수들이 메달에 집착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 도쿄올림픽을 ‘즐!림픽’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MZ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는 생각이 뚜렷하고 좌고우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다. 변화에 유연하고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쓰는 돈이나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전 세대와 근본적인 여건의 차이는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는 점이다. ‘뭐든 해 낼 수 있다’고 배웠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뭐든 할 수 없는’ 절벽이 된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최근 MZ 세대 작가 이윤주 씨의 ‘닮고 싶지 않은 노년 3, 닮고 싶은 노년 3’ 칼럼을 흥미 있게 읽었다. “의리로 사는 거지 좋아서 살겠어” 하고 마누라 흉보는 노년은 닮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내의 노고에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 형이다. “어이” 하고 아무렇게나 호칭하는 어른도 ‘진상’아니면 교양이 부족하다고 느껴져 싫다. 아저씨 되는 게 두려워 젊은 층을 ‘중년의 굴레’로 끌어들이려 등산 모임 가입 등 ‘강요형’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닮고 싶은 유형은 ‘유통기한’이 가까워지면서 말 안 듣는 몸인데도 눈치 안 보고 꾸준히 운동하는 아줌마다. 늦었다 생각 않고 도전하는 중년의 유머 넘치는 아줌마에게도 응원의 갈채를 보낸다. 노안을 극복하고 책과 가까이하는 노년은 상상만으로도 품격을 느낀다.
흔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닮고 싶은 어른이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지혜와 경륜을 펴는 어른이 많은 사회는 윤택하다. 얼마 전 카톡으로 받은 문자가 긴 여운을 남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비유는 단순 명쾌하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니라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어른이다. 나는 노인인가? 어른인가? 곱○○○어 본다.
정적인 스포츠 양궁 경기장에서 요란스레 “파이팅”을 외치며 활시위를 당긴 2관왕의 김제덕도 “노력하면서 즐겼다”고 밝혀 주눅 들지 않고 승부 자체를 즐겼다.
아시아 수영 역사를 새로 쓴 고교생 수영선수 황선우는 “쟁쟁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치른 것조차 만족한다”며 긍정 마인드를 드러냈다. 첫 올림픽을 좋은 성적으로 무사히 마쳐 후련하고 행복하다는 말은 달달하다. 유도 남자 100kg급 결승전 연장전에서 패자가 된 29살 조구함 선수는, 종료 휘슬이 울리자 상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대결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여자 펜싱 ‘에페’ 단체전 금메달을 놓고 에스토니아 선수와 맞붙었던 93년생 송세라 선수는 중심을 잃은 상대를 배려하여 경기를 멈춘 것도 아름답다. 앞 세대 선수들이 메달에 집착하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 도쿄올림픽을 ‘즐!림픽’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MZ세대(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는 생각이 뚜렷하고 좌고우면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다. 변화에 유연하고 새롭고 이색적인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쓰는 돈이나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이전 세대와 근본적인 여건의 차이는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는 점이다. ‘뭐든 해 낼 수 있다’고 배웠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뭐든 할 수 없는’ 절벽이 된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최근 MZ 세대 작가 이윤주 씨의 ‘닮고 싶지 않은 노년 3, 닮고 싶은 노년 3’ 칼럼을 흥미 있게 읽었다. “의리로 사는 거지 좋아서 살겠어” 하고 마누라 흉보는 노년은 닮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내의 노고에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 형이다. “어이” 하고 아무렇게나 호칭하는 어른도 ‘진상’아니면 교양이 부족하다고 느껴져 싫다. 아저씨 되는 게 두려워 젊은 층을 ‘중년의 굴레’로 끌어들이려 등산 모임 가입 등 ‘강요형’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닮고 싶은 유형은 ‘유통기한’이 가까워지면서 말 안 듣는 몸인데도 눈치 안 보고 꾸준히 운동하는 아줌마다. 늦었다 생각 않고 도전하는 중년의 유머 넘치는 아줌마에게도 응원의 갈채를 보낸다. 노안을 극복하고 책과 가까이하는 노년은 상상만으로도 품격을 느낀다.
흔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닮고 싶은 어른이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지혜와 경륜을 펴는 어른이 많은 사회는 윤택하다. 얼마 전 카톡으로 받은 문자가 긴 여운을 남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비유는 단순 명쾌하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니라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어른이다. 나는 노인인가? 어른인가? 곱○○○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