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스님] 노년의 멋진 삶이란?
[정운 스님] 노년의 멋진 삶이란?
by 정운 스님 2021.08.31
옛날 대가족이 살 때의 일이다. 시어머니가 집안 살림을 하고, 고방[창고] 열쇠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는 70세가 넘고, 점점 치매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대 가족 살림을 놓지 못하고, 고방 열쇠까지 쥐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아직 치매가 심각하지 않으니, 며느리에게 창고 열쇠도 주고, 모든 살림을 맡기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나이 들어서도 물건에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자신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셈이다. 지금이 아닌 예전 우리 할머니들의 (몇 분)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런 비슷한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이제는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20여 년 전에 입적한 A 스님이 있다. A 스님의 외증조할머니 이야기다. 할머니는 홀로된 지 오래되었다. 60여 세의 할머니는 아들 셋이 모두 성공했고, 자식들이 모두 효자였다.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구니 스님이 탁발을 왔다. 할머니는 스님 바랑에 쌀을 넣어주면서 자식 자랑을 늘어지게 하였다. 스님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할머니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할머니, 자식 자랑도 지나치면, 애착입니다. 죽어서도 업業이 됩니다.”
“업”이라는 단어에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할머니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할머니에게 지극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을 하라고 하였다. 이후 할머니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염불하였고, 88세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장례식에 기이한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혹 타 종교인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 외증조모 할머니 이래로 A 스님의 일가친척이 49명이 출가했다.
또 외국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한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미얀마에서 1년간 명상하였다. 그때 미얀마에서 80세가 넘은 베트남 할머니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딸 스님을 따라 미얀마에 명상하러 온 것이다. 할머니는 그 당시도 신장암에 걸려 투석을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미얀마로 오기 전 베트남에서 ‘죽더라도 명상을 해야겠다. 뭔가 나를 찾는 일을 해야지.’ 결심하고, 미얀마에 오셨다. 할머니는 명상 마스터로부터 수행을 잘한다고 칭찬받았고, 주변 명상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법구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호화롭던 황제의 수레가 부서지듯 우리 몸도 늙으면, 형체가 썩는다. 오직 선업善業만이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거니 이는 지혜로운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 「노년품」 #151
이 원고에서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년에 명예ㆍ욕심 내려놓고, 자신을 살펴보자.’이다. 물론 삶의 방식이 시대적으로 다르고, 사람마다 인생 가치 기준이 다르다. 하지만, 삶의 가치를 찾는 일에는 시대를 초월한다고 본다. 필자가 스님이니까 불교를 믿으라고 절대 권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 100년도 못 사는 삶이다. 게다가 나이 들어서는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건과 돈ㆍ명예를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 의미 있다고 본다. 멋지게 늙어가자.
나이 들어서도 물건에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자신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셈이다. 지금이 아닌 예전 우리 할머니들의 (몇 분)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런 비슷한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다.
이제는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20여 년 전에 입적한 A 스님이 있다. A 스님의 외증조할머니 이야기다. 할머니는 홀로된 지 오래되었다. 60여 세의 할머니는 아들 셋이 모두 성공했고, 자식들이 모두 효자였다.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구니 스님이 탁발을 왔다. 할머니는 스님 바랑에 쌀을 넣어주면서 자식 자랑을 늘어지게 하였다. 스님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할머니에게 한 마디 툭 던졌다.
“할머니, 자식 자랑도 지나치면, 애착입니다. 죽어서도 업業이 됩니다.”
“업”이라는 단어에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할머니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할머니에게 지극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을 하라고 하였다. 이후 할머니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염불하였고, 88세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장례식에 기이한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혹 타 종교인이 불편할 수도 있으니,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 외증조모 할머니 이래로 A 스님의 일가친척이 49명이 출가했다.
또 외국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한다. 필자는 10여 년 전에 미얀마에서 1년간 명상하였다. 그때 미얀마에서 80세가 넘은 베트남 할머니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딸 스님을 따라 미얀마에 명상하러 온 것이다. 할머니는 그 당시도 신장암에 걸려 투석을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미얀마로 오기 전 베트남에서 ‘죽더라도 명상을 해야겠다. 뭔가 나를 찾는 일을 해야지.’ 결심하고, 미얀마에 오셨다. 할머니는 명상 마스터로부터 수행을 잘한다고 칭찬받았고, 주변 명상자들의 귀감이 되었다. <법구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호화롭던 황제의 수레가 부서지듯 우리 몸도 늙으면, 형체가 썩는다. 오직 선업善業만이 고통을 벗어나는 길이거니 이는 지혜로운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 「노년품」 #151
이 원고에서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년에 명예ㆍ욕심 내려놓고, 자신을 살펴보자.’이다. 물론 삶의 방식이 시대적으로 다르고, 사람마다 인생 가치 기준이 다르다. 하지만, 삶의 가치를 찾는 일에는 시대를 초월한다고 본다. 필자가 스님이니까 불교를 믿으라고 절대 권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 100년도 못 사는 삶이다. 게다가 나이 들어서는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건과 돈ㆍ명예를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는 것, 의미 있다고 본다. 멋지게 늙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