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박사님] 걷는다는 것
[김민정 박사님] 걷는다는 것
by 김민정 박사님 2021.10.04
외발로 선 저것은 왼발일까 오른발일까
발이 되어 주려고 약속이 서성인다
누군가 지탱하는 일/ 경건한 위안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경사진 후유증
뒤꿈치의 기다림은 시간을 끌어안고
어깨에 피어나는 힘/ 서툰 걸음 달랜다
어제의 기억만으로 걷지 못하는 목발
가볍거나 무거운 몸이 서로 부축한다
한 걸음 살아있을 때/ 발은 발을 맞춘다
- 박화남, 「걷는다는 것」 전문
걷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시인은 걸으면서 시상도 떠올리고 철학자들은 걸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여 철학의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시인이나 철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산책을 하면서 자신의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 할 일 기획하고, 미래를 설계하기도 한다. 걸으면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더 깊게 하며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다.
또한 걷는 것이 가장 하기 쉬운, 그러면서 가장 큰 육체 운동이 되기도 한다. 격한 운동이 아니라서 몸에 무리가 가는 일도 별로 없어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모두에게 좋은 운동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걸음을 걸을 때 두 발을 사용한다. 그러다가 한 발을 잃거나 다쳤을 때 우리는 비로소 두 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위의 시조 첫째 수에서는 한 발을 다친 사람을 위해 그를 도와주려고 서성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외발로 서 있는 것, 그것이 왼발이든 오른발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목발인 화자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짐을 막기 위해 나머지 발의 역할을 하려고 서성이며 그의 발이 되어 그를 지탱하는 일을 ‘경건한 위안’으로 삼고 있다. 한자漢字의 사람인(人) 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꼭 육체적인 외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 우리는 외로울 때가 많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한쪽 발을 대신할, 한쪽 발의 힘이 되어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둘째 수에서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경사진 후유증’이라고 했다. 외발로 지탱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목발을 짚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곁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평형을 이루며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다친 사람은 ‘뒤꿈치의 기다림은 시간을 끌어안고/ 어깨에 피어나는 힘/ 서툰 걸음 달랜다’고 한다. 시간이 가야만 치유가 가능한 것이고, 다친 발이 빨리 낫기를 바라며, 어깨에 힘을 주고 서툰 걸음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도 삶의 모습과 연관 지을 수 있다. 늘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어느 한 쪽을 택했을 때 다른 것을 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어 ‘어제의 기억만으로 걷지 못하는 목발’이라고 한다. 목발은 육체 한쪽의 상실이나 부자유스러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목발은 한 발을 대신해서 쓰는 물건이긴 하지만 몸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고, 부축하는 팔의 힘이나 어깨의 힘이 있어야만 지탱이 되는 것이다. ‘한 걸음 살아있을 때/ 발은 발을 맞춘다’고 한다. 걷는다는 것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두 발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가 불편할 때 비로소 두 발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균형을 이루었을 때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발이 되어 주려고 약속이 서성인다
누군가 지탱하는 일/ 경건한 위안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경사진 후유증
뒤꿈치의 기다림은 시간을 끌어안고
어깨에 피어나는 힘/ 서툰 걸음 달랜다
어제의 기억만으로 걷지 못하는 목발
가볍거나 무거운 몸이 서로 부축한다
한 걸음 살아있을 때/ 발은 발을 맞춘다
- 박화남, 「걷는다는 것」 전문
걷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시인은 걸으면서 시상도 떠올리고 철학자들은 걸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여 철학의 깊이를 더하기도 한다. 시인이나 철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산책을 하면서 자신의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 할 일 기획하고, 미래를 설계하기도 한다. 걸으면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더 깊게 하며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다.
또한 걷는 것이 가장 하기 쉬운, 그러면서 가장 큰 육체 운동이 되기도 한다. 격한 운동이 아니라서 몸에 무리가 가는 일도 별로 없어 나이 든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모두에게 좋은 운동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걸음을 걸을 때 두 발을 사용한다. 그러다가 한 발을 잃거나 다쳤을 때 우리는 비로소 두 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위의 시조 첫째 수에서는 한 발을 다친 사람을 위해 그를 도와주려고 서성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외발로 서 있는 것, 그것이 왼발이든 오른발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목발인 화자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짐을 막기 위해 나머지 발의 역할을 하려고 서성이며 그의 발이 되어 그를 지탱하는 일을 ‘경건한 위안’으로 삼고 있다. 한자漢字의 사람인(人) 자가 생각나기도 한다. 꼭 육체적인 외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 우리는 외로울 때가 많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한쪽 발을 대신할, 한쪽 발의 힘이 되어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둘째 수에서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도 경사진 후유증’이라고 했다. 외발로 지탱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목발을 짚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곁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평형을 이루며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그래서 다친 사람은 ‘뒤꿈치의 기다림은 시간을 끌어안고/ 어깨에 피어나는 힘/ 서툰 걸음 달랜다’고 한다. 시간이 가야만 치유가 가능한 것이고, 다친 발이 빨리 낫기를 바라며, 어깨에 힘을 주고 서툰 걸음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도 삶의 모습과 연관 지을 수 있다. 늘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어느 한 쪽을 택했을 때 다른 것을 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어 ‘어제의 기억만으로 걷지 못하는 목발’이라고 한다. 목발은 육체 한쪽의 상실이나 부자유스러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목발은 한 발을 대신해서 쓰는 물건이긴 하지만 몸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고, 부축하는 팔의 힘이나 어깨의 힘이 있어야만 지탱이 되는 것이다. ‘한 걸음 살아있을 때/ 발은 발을 맞춘다’고 한다. 걷는다는 것은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는 두 발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가 불편할 때 비로소 두 발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균형을 이루었을 때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