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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

[한희철 목사님]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

by 한희철 목사님 2021.10.19

따로 관심을 가지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무의 나이테는 어느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겠지요? 시간이 지나가며 그동안 보낸 시간들이 자기 몸에 남는 과정을 거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편안한 시간일 때는 느긋하게, 혹독한 시간일 때는 그 시간을 기억하듯 촘촘하게, 나이테에는 나무가 지나온 시간의 내력도 담깁니다. 시간을 익힐 시간이 필요하여 단번에 그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나이테의 의미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그어지는 것, 그것은 비단 나무의 나이테만은 아닐 것입니다. 기억의 나이테도 다르지 않겠다 여겨집니다. 어떤 일을 겪을 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겠다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가며 희미해지거나 가벼워지고, 그러다가 무게를 잃어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지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두고두고 마음을 떠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씨앗 하나가 척박한 땅에 떨어져 억척스레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쉬 사라질 줄 알았던 기억이 가슴속에 나이테 하나를 긋는 경우입니다.
DMZ를 따라 열하루 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뜨거운 땡볕 아래, 한 마리 벌레처럼 혼자 그 길을 걸었습니다. 최북단에 있다는 고성의 명파 초등학교를 찾아가 첫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4년 전, 시간이 지나가며 그 기억은 희미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힘든 시절 때문인지 갈수록 또렷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돌산령 터널입니다. 펀치 볼로 알려진 해안을 떠나 양구로 향할 때였습니다. 무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났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 돌산령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터널의 길이는 2995미터, 걸어서 지나가기에는 길어도 너무 길었습니다. 한참을 걸어도 저 끝 바늘구멍 같은 빛의 출구는 신기루처럼 멀어질 뿐이었습니다. 트럭 한 대만 지나가도 터널을 울리는 굉음으로 인해 고막이 먹먹해지곤 했습니다.
그야말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만치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던 것은 그동안 DMZ를 따라 걷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나면 인사라도 해야지 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이게 웬일이겠습니까, 마주 오던 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이었고, 컴컴한 터널 안인데 어찌 나를 알고 부를까, 너무도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이는 잘 아는 지인이었습니다. 혼자 길을 걷는 나를 위해 새벽같이 길을 떠난 두 내외가 내가 걸음직한 길을 거꾸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터널 밖에서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날 하루 같이 길을 걸었습니다. 그날 그 순간이 또렷하게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지금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이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행입니다.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가는 것이, 어둠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