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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김재은 대표님] 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by 김재은 대표님 2021.10.26

미리 이야기하지만 난 결코 전문 산악인이 아니다. 히말라야 8000미터 고봉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나 남미의 아콩카과 같은 대륙 최고봉은 물론 이렇다 할 세계의 산들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고작해야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에 오르면서도 헐떡이는 장삼이사일 뿐이다. 다만 어떤 산에 오르더라도 그냥 그대로 즐기는 습관이 있다는 게 전부다.
에베레스트 도전 신화의 주인공인 영국 산악인 조지 말로리는 말했다. ‘산이 거기에 있어 그곳에 간다’고. 나야말로 ‘산이 있어 가는’ 조지 말로리의 신봉자인지도 모르겠다. 산에 가면 그저 좋으니 틈만 나면 산에 오르는 보잘것없는 일개 ‘등산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감히 작은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국토의 70% 가까이가 산인 대한민국에서 산이 주는 엄청난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렸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갈등과 스트레스가 많은 삶에서 치유와 행복의 길이 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07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나도 이제 산에 다녀야겠다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의기투합했다. 그때까지는 ‘나이가 들어야 산에 가는’ 이해가 잘 안되는 관행이 발목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첫 산행지로 청계산에 올라가는데 얼마나 힘이 들던지 ‘다음엔 절대로 산에 가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이 절로 일어났다. 이리 힘든 일을 앞으로 계속해 나갈 생각을 하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그 후로 십수 년이 지났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다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왜 그때 이후 멈추지 않고 산을 계속 찾게 되었을까. 돌아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산에 오르는 것은 ‘그냥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반드시 땀을 흘려야 하고 시간 속의 고통을 인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저 얻는 것을 싫어하는 삶’의 철학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폴란드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는 ‘등산은 인내의 예술이다’라고 했나 보다. 산에 오를 때 왜 나이보다 관록과 경험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은 산린이(산을 찾는 젊은 사람들)들이 많아져 이런 의미에도 변화가 생겨날 것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힘들게 올랐을 때 산마루나 정상에서 만나는 풍광, 거기에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 땀을 식힐 때 밀려오는 상쾌함과 성취감, 행복감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니 산에 오르는 것은 그대로 농부정신의 체감인 듯하다. 씨를 뿌리고 풀을 매고, 장마와 땡볕을 이겨내며, 견디고 버티고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농군이야말로 산에 오르는 것과 많이 닮았으니.
지금까지의 앞만 보고 달려 나온 삶에서 벗어나 주위의 나무나 숲을 돌아보고, 풀벌레나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뚜벅뚜벅 걸어나가 보면 순간순간 온전히 깨어있는 삶과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보다 더 가슴 뛰고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으랴. 때론 숨이 가빠 오지만 이보다 더 살아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으랴.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말했다. 우리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은 괜찮지만, 남을 이기기 위해 산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고.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인생의 참맛을 느끼려면 사람의 숲으로 가고, 진짜 가을을 만끽하려면 가을 숲으로 가야 한다. 가을이 끝나기 전, 가을 산, 가을 숲으로 떠나보자. 내 삶의 자유를 찾으러. 나는 오늘도 산이 있어 산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