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박사님] 괜찮소
[김민정 박사님] 괜찮소
by 김민정 박사님 2021.11.01
벗이 혹 찾아주면 단칸방도 괜찮소
나물 찬 몇이라도 잔 나누어 괜찮소
툇마루 달빛 깊으면 묵은 얘기도 괜찮소
마음에 서린 풍광 여유로워 괜찮소
계절로 늘 분주한 앞산 두어 괜찮소
개천은 다만 정갈하니 맘을 씻어 괜찮소
세 아이 든든하니 있음으로 괜찮소
넘치진 아니해도 모자라지 않아 괜찮소
미쁘게 어울려지니 곡진하여 괜찮소
우뚝한 재주 아녀도 즐거우니 괜찮소
천성이 게을러도 올곧으니 괜찮소
이만큼 달려왔으니 언제라도 괜찮소
- 황삼연, 「괜찮소」전문
이 시조를 보며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난다면 각 장의 끝 음보 “괜찮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조는 자신의 삶에 자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조다.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시처럼 안분지족이나 안빈낙도의 경지,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이 보인다.
첫 수에서는 가난한 생활이라도 벗이 오면 소박하게 반기며 잔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이니 괜찮다는 뜻이고, 둘째 수에서는 마음에 서린 시골의 풍광을 말하며 계절이 바뀔 때면 언제나 분주한 앞산이지만 개천은 늘 변함없이 정갈하니 맘을 씻을 수 있어 여유를 즐길 수 있으니 괜찮다는, 셋째 수에 오면 세 자식이 있으니 든든하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미쁘게 잘 어울리니 괜찮다는 뜻이다. 넷째 수에서는 자신의 재주(글 쓰는 재주)는 우뚝하진 않아도 즐거우니 괜찮고, 또 게을러도 올곧으니 괜찮고, 이만큼 달려왔으니 언제라도 괜찮다는 뜻인데, 언제라도 그 재주를 접을 수도 있고, 삶을 마감해도 좋다는 홀가분함이 있어서 괜찮다는 뜻이다. 초연한 삶의 자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삶은 어떻게 살아도 늘 후회가 따르는 법이다. 자기가 살아보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던 시절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늙으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잘못 살아온 느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위 시조처럼 언제라도 후회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에 후회할 것이 없어 보인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도 자기의 뜻과는 다르게 인생이 풀릴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인생은 많이 좌우된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 선택한 것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큰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작은 것부터 목표로 삼아 자주자주 성취욕을 맛보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현명한 선택이다.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에만 매달리다 보면 작은 성취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단계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그 하나에 도달할 때마다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다음 목표에 대해 힘이 솟고,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 계단을 오르듯이 차곡차곡 하나씩 오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바라던 목표 지점에 우뚝 서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들은 지나온 삶을 회의하기보다 자신에게 “잘 살아 왔노라.”고 토닥거려주고,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격려를 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나물 찬 몇이라도 잔 나누어 괜찮소
툇마루 달빛 깊으면 묵은 얘기도 괜찮소
마음에 서린 풍광 여유로워 괜찮소
계절로 늘 분주한 앞산 두어 괜찮소
개천은 다만 정갈하니 맘을 씻어 괜찮소
세 아이 든든하니 있음으로 괜찮소
넘치진 아니해도 모자라지 않아 괜찮소
미쁘게 어울려지니 곡진하여 괜찮소
우뚝한 재주 아녀도 즐거우니 괜찮소
천성이 게을러도 올곧으니 괜찮소
이만큼 달려왔으니 언제라도 괜찮소
- 황삼연, 「괜찮소」전문
이 시조를 보며 이상의 오감도가 생각난다면 각 장의 끝 음보 “괜찮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조는 자신의 삶에 자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조다.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시처럼 안분지족이나 안빈낙도의 경지,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이 보인다.
첫 수에서는 가난한 생활이라도 벗이 오면 소박하게 반기며 잔을 나눌 수 있는 상황이니 괜찮다는 뜻이고, 둘째 수에서는 마음에 서린 시골의 풍광을 말하며 계절이 바뀔 때면 언제나 분주한 앞산이지만 개천은 늘 변함없이 정갈하니 맘을 씻을 수 있어 여유를 즐길 수 있으니 괜찮다는, 셋째 수에 오면 세 자식이 있으니 든든하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미쁘게 잘 어울리니 괜찮다는 뜻이다. 넷째 수에서는 자신의 재주(글 쓰는 재주)는 우뚝하진 않아도 즐거우니 괜찮고, 또 게을러도 올곧으니 괜찮고, 이만큼 달려왔으니 언제라도 괜찮다는 뜻인데, 언제라도 그 재주를 접을 수도 있고, 삶을 마감해도 좋다는 홀가분함이 있어서 괜찮다는 뜻이다. 초연한 삶의 자세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삶은 어떻게 살아도 늘 후회가 따르는 법이다. 자기가 살아보지 못한 부분을 아쉬워하기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시간을 낭비했던 시절을 아까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늙으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잘못 살아온 느낌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위 시조처럼 언제라도 후회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살아온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에 후회할 것이 없어 보인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도 자기의 뜻과는 다르게 인생이 풀릴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는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인생은 많이 좌우된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 선택한 것에 얼마나 집중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큰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작은 것부터 목표로 삼아 자주자주 성취욕을 맛보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현명한 선택이다.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에만 매달리다 보면 작은 성취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작은 단계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 그 하나에 도달할 때마다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다음 목표에 대해 힘이 솟고,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 계단을 오르듯이 차곡차곡 하나씩 오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바라던 목표 지점에 우뚝 서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들은 지나온 삶을 회의하기보다 자신에게 “잘 살아 왔노라.”고 토닥거려주고,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격려를 해주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