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박사님] 낙엽 시절
[김민정 박사님] 낙엽 시절
by 김민정 박사님 2021.11.15
짓궂은 환쟁이가 덧칠한 유화 위에
못 부친 편지들이 수북이 쌓입니다
바람도 궁금했는지 구석구석 뒤집니다
물소리 얇아지면 하늘은 넓어지고
깡마른 가지 끝에 실금이 가는 시간
하현달 동그란 혀가 상처 핥아줍니다
모지라진 붓끝으로 그려낸 법화경이
입동의 창가에서 물어오는 저녁 안부
별똥별 하나둘 지면 당신 쏟아집니다
- 유선철 「낙엽 시절」전문
입동이 지나고 가을비가 한 이틀 전국적으로 쏟아지자, 거리엔 낙엽이 분분하다. 은행나무 많은 우리 동네엔 은행잎이 지천으로 깔려 여기도 은행, 저기도 은행 갑자기 돈부자가 된 느낌이다. 주변이 온통 은행이니 괜스레 마음이 넉넉해지기도 한다. 맡길 돈도, 찾을 돈도 없으면서 말이다.
바닥에 노랗게 깔린 은행잎, 아니 차량 지붕에도 유리에도 온통 은행잎이 달라붙어 있다. 미처 떼어내지 못하고 거리를 달리다 보니 바람에 휘휘 날려가기도 한다. 우수수 지는 낙엽을 보면서 또 한 번의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한다. 입동도 지났고, 날씨도 쌀쌀해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기도 했다. 첫 수의 ‘짓궂은 환쟁이가 덧칠한 유화’라는 말에서 오는 연상작용이라 생각된다. 울긋불긋한 낙엽 모습을 마치 환쟁이들이 짓궂게 덧칠한 유화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어서다. 낙엽이 뒹굴며 쌓이는 모습을 못 부친 편지들이 쌓인다며 바람들도 궁금하여 구석구석 뒤진다고 표현한다.
둘째 수에 오면 늦가을의 물과 하늘, 앙상한 나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름날 소나기 등으로 풍성하던 물소리는 얇아지고 쌀쌀한 날씨 속에 하늘은 청명하여 더 넓게 보인다는 뜻이며 잎새를 다 떨구어 가는 가지까지 보이는 나무들을 실금이 가는 시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금은 움츠러들고 스산한 가을 사물에 대한 애틋함을 하현달이 동그란 혀가 되어 그 상처들을 핥아준다고 한다.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아무것도 구별하지 말라./ 삼천 가지 변화가 생각 하나에 있으니 찰나에 모든 게 이루어진다./ 본성을 깨달으면 지금 당장 부처가 되리라’라는 석가모니가 말년에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불경인 법화경, 석가모니의 가장 성숙한 사상이 담겨 있으므로 ‘불경 중의 왕’이라고 불린다. 그 법화경이 ‘입동의 창가에서 안부를 물어온다’고 한다. 잘 지내냐는, 별일 없냐는 인간에 대한 안부일 수도 있겠다. 그러한 사이 또다시 밤이 오고 ‘별똥별 하나둘 지면 당신 쏟아집니다’라며, 쏟아져 쌓이는 낙엽을 표현한다. 바야흐로 낙엽 시간이며 낙엽의 계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 중 또 한 계절과 이별하는 시간이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인 이때쯤이면 유독 쓸쓸하다.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삶을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다. 그것은 인생의 시간이 사계절과 닮아있고, 나뭇잎을 닮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에는 초년으로 싹을 틔우는 나뭇잎이고 여름엔 무성하게 자라는 청년이며 푸른 나뭇잎이고, 가을엔 생의 연륜이 쌓인 장년으로 단풍 든 나뭇잎이고, 겨울엔 노년이 되어 어느 날 찬바람에 낙엽으로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주변에 덕을 쌓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 사후에도 욕먹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은행잎이 깔린 11월 거리를 바라보면서…
못 부친 편지들이 수북이 쌓입니다
바람도 궁금했는지 구석구석 뒤집니다
물소리 얇아지면 하늘은 넓어지고
깡마른 가지 끝에 실금이 가는 시간
하현달 동그란 혀가 상처 핥아줍니다
모지라진 붓끝으로 그려낸 법화경이
입동의 창가에서 물어오는 저녁 안부
별똥별 하나둘 지면 당신 쏟아집니다
- 유선철 「낙엽 시절」전문
입동이 지나고 가을비가 한 이틀 전국적으로 쏟아지자, 거리엔 낙엽이 분분하다. 은행나무 많은 우리 동네엔 은행잎이 지천으로 깔려 여기도 은행, 저기도 은행 갑자기 돈부자가 된 느낌이다. 주변이 온통 은행이니 괜스레 마음이 넉넉해지기도 한다. 맡길 돈도, 찾을 돈도 없으면서 말이다.
바닥에 노랗게 깔린 은행잎, 아니 차량 지붕에도 유리에도 온통 은행잎이 달라붙어 있다. 미처 떼어내지 못하고 거리를 달리다 보니 바람에 휘휘 날려가기도 한다. 우수수 지는 낙엽을 보면서 또 한 번의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한다. 입동도 지났고, 날씨도 쌀쌀해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기도 했다. 첫 수의 ‘짓궂은 환쟁이가 덧칠한 유화’라는 말에서 오는 연상작용이라 생각된다. 울긋불긋한 낙엽 모습을 마치 환쟁이들이 짓궂게 덧칠한 유화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어서다. 낙엽이 뒹굴며 쌓이는 모습을 못 부친 편지들이 쌓인다며 바람들도 궁금하여 구석구석 뒤진다고 표현한다.
둘째 수에 오면 늦가을의 물과 하늘, 앙상한 나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름날 소나기 등으로 풍성하던 물소리는 얇아지고 쌀쌀한 날씨 속에 하늘은 청명하여 더 넓게 보인다는 뜻이며 잎새를 다 떨구어 가는 가지까지 보이는 나무들을 실금이 가는 시간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금은 움츠러들고 스산한 가을 사물에 대한 애틋함을 하현달이 동그란 혀가 되어 그 상처들을 핥아준다고 한다.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아무것도 구별하지 말라./ 삼천 가지 변화가 생각 하나에 있으니 찰나에 모든 게 이루어진다./ 본성을 깨달으면 지금 당장 부처가 되리라’라는 석가모니가 말년에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불경인 법화경, 석가모니의 가장 성숙한 사상이 담겨 있으므로 ‘불경 중의 왕’이라고 불린다. 그 법화경이 ‘입동의 창가에서 안부를 물어온다’고 한다. 잘 지내냐는, 별일 없냐는 인간에 대한 안부일 수도 있겠다. 그러한 사이 또다시 밤이 오고 ‘별똥별 하나둘 지면 당신 쏟아집니다’라며, 쏟아져 쌓이는 낙엽을 표현한다. 바야흐로 낙엽 시간이며 낙엽의 계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 중 또 한 계절과 이별하는 시간이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인 이때쯤이면 유독 쓸쓸하다.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삶을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다. 그것은 인생의 시간이 사계절과 닮아있고, 나뭇잎을 닮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봄에는 초년으로 싹을 틔우는 나뭇잎이고 여름엔 무성하게 자라는 청년이며 푸른 나뭇잎이고, 가을엔 생의 연륜이 쌓인 장년으로 단풍 든 나뭇잎이고, 겨울엔 노년이 되어 어느 날 찬바람에 낙엽으로 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주변에 덕을 쌓으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 사후에도 욕먹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은행잎이 깔린 11월 거리를 바라보면서…